비교하지말자 [401975] · MS 2012 · 쪽지

2014-02-03 01:21:48
조회수 9,550

스무살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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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스무살 이후의 삶.


 


나의, 스무살 이후의 삶은

가능성과 막막함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여기서 '나의' 라는 단어를 '우리의'라는 단어로 바꾸더라도

별다른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험은 일단 미뤄두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스무살이후의 삶'을 일반론으로 접근한다면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전까지의 금기가 풀리고 현재 소속된 학교와 작별을 고하고.

어찌되었던 새로운 사회에 몸을 담고.

이전과는 다른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게 되니까.



나의 경우에는 스무살 이후의 삶은 주변과 나 자신을 

관찰하게 되는 시기였다.


드러나지 않았던 환경과 경험의 차이는 존재했겠지만,

같은 교실에서 같은 문제를 풀고 같은 일상을 공유하던

친구들은 제각각의 빛을 발하며 나와의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제 구체화 될지 몰라서 막막했던 종이쪼가리 위의 숫자들은 각 대학의 이정표가 되었고,

머리카락이나 교복의 길이정도를 바꾸던 외적인 개성은 

매스미디어의 연예인들을 모방하듯 화려해져갔다.

또한 감춰두고 억눌러왔던 내면적인 개성은 

날아오는 돌에 맞아 깨어지고, 흩어지는, 유리창의. 유리조각처럼

사방팔방으로 속도를 내며 날아가더라.


나는 숫자가 적혀 있는 나의 종이쪼가리를 접어 책상밑으로 집어넣었고,

연예인 모방은 포기하고 머리카락의 길이는 더 짧게 만들어버렸다.  

또한 나의 유리조각은  '마일드 세븐'이라는 상징으로 표출되어버렸다.


나의 유리조각은, 그러니까 마일드세븐은 1월 2일 시립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

제각각의 빛을 발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던 타인을 바라보던 

나는 어린치기로 도피적인 선택을 하였다.

물론  나와 동행하는 많은 타인들도 존재하더라. 그래서 약간은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도피적인 선택이라는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선택은 학벌이라는 백마탄 왕자님을 통해, 그리고 사회의 기득권을 통해

미래에 대한 막막한 불안을 억누르려는 시도였다.

물론 완전히 엇나간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도해볼만한 가능성에 대한 투자였다.

하지만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억누르려한 선택이

나를 더욱 막막하게 한다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나의 유리조각, 그러니까 마일드세븐은 스무살이 되고나서 이틀뒤인

1월 2일. 그러니까 휴관한 신정날을 제외하면 성인이 된 후 첫날에 나에게 박혔다.

권리와 동시에 의무가 뒤따르는 나의 성인으로써의 삶은 '금기'로 시작되었다.


별볼일 없는 금기. 역설적인 금기.



이제 스무살이 되었으니 도서관자리를 '청소년남학생실'에서 '성인실'로

변경해야 한다는 별볼일 없던 금기. 원인모를 책임감을 부여하는 금기.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 저런 별볼일 없는 금기에 혼란을 느끼며

방황하며 성년'티'를 내기 위해 어설프게 쥐었던 담배가.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자기만의 방에 갇혀 막막해 하던 나에게,

원인모를 상실감으로 불안해 하던 나에게, 는 충분한 자극이었다.

단단한 다이아몬드는 쇠줄로 긁어도 흠집하나 나지 않지만

물렁한 두부는 스치는 나무젓가락에도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니까.

창피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두부보다도 못한 존재라서,

나무젓가락만도 못한 자극에도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무살 이후의 삶.

어쩌면 스무살 이후의 막막함, 불안감, 자괴감은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기저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흔히들 말한다. 실패하지 않는 자는 도전하지 않는 자라고.


나는무분별한 도전과 경험은 유혹에 대한 굴복 

혹은 무지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존재론적 결함이 있는. 숱한 오류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과정에서 겪는 불안이나 막막함 그리고 단기적 실패는

추구하는 가치나 이상향이 있는 존재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나눌 수 있다면. 나눠야 한다면 성공과 실패사이에는

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능성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은

설렘, 부터 불안,막막함까지 형형색색의 감정들이지 않을까.


단순히 우리들의 스무살이후의 상황(재수, 취업, 대입 등)을

넘어선 본질(설렘,불안,가능성 등)을 바라본다면

초기성년기의 우리들의 삶은

가능성과 막막함의 관념을 받아들이는 과도기적 시기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들에게 기형도의 짧은 산문중의

한구절을 소개해주고 싶다.


내버려두세요. 뭐든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나는, 스무살이라는 산술적인 나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뭐든지 새로이 시작하는 존재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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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rowItAway · 478124 · 14/02/03 01:25 · MS 2016

    오르비 운영자님, 다시 한번 정중히 건의 드립니다. 추천횟수 제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회로 올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글에 추천 1번밖에 못하는게 너무 아쉽습니다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4 01:12 · MS 2012

    사실.. 창피할정도로 솔직해지면

    이런반응을 원하고 글을 쓰는 거긴한데

    막상이런 피드백받으면 참 부담스럽죠

  • 별쪽 · 451590 · 14/02/03 01:36 · MS 2013

    좋아요누르고읽어요 ㅋㅋ

  • VT_솔로깡 · 330158 · 14/02/03 02:00

    이번 글 또한 큰 힐링을 받고 갑니다. 비교님의 글은 역시 뭔가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4 01:23 · MS 2012

    ㅋㅋ 채팅반전^^..

    다채로운 내면이 있죠 개인들은..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4 01:23 · MS 2012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탐욕. · 422463 · 14/02/03 03:32 · MS 2018

    이제 스무살이 된 평범한 저에게도 가능성이 있을 거에요..!

  • 열정forever · 441467 · 14/02/03 04:19 · MS 2013

    정말 한자한자 살펴 읽었습니다...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새해복많이받으셔요~

  • 강서 · 492581 · 14/02/03 06:08 · MS 2014

    좋네요..

  • 아프리카청춘이다 · 439935 · 14/02/03 07:14 · MS 2017

    와 글 잘쓰시네요 ㄷㄷ

  • lkrose · 321592 · 14/02/03 15:06 · MS 2017

    글 잘 읽었습니다. 시도없이 결과도 없겠죠? "비교하지 말자"라는 닠이 인상적이네요. 행복하긴 쉽다. 그러나 남보다 행복하긴 어렵다. <포이엘 바하>

  • 머머머머머머 · 400872 · 14/02/03 17:23 · MS 2012

    머야 오글거리게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3 18:05 · MS 2012

  • 머머머머머머 · 400872 · 14/02/05 10:19 · MS 2012

    무의미 해보였던 종이쪼가리 위의 숫자들은 각 대학의 이 정표가 되었고, 이부분 전혀감정이입 안되네요 님은정말 그 숫자들이 무의미해보였나요 지나친 과장과 미사여구는 보는사람을 지치게합니다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5 15:11 · MS 2012

    네. 참고할께요
    그대의 관점도 옳아요.

    하지만 너무 자신을 옥죄진 맙시다~
    때로는 스스로의 관점의 변화가
    세상의 혁명보다도 나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수정.

  • ThMed · 374249 · 14/02/04 09:25

    수준..

  • 자만하지말자 · 451410 · 14/02/03 22:37

    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통찰력 있는 글을 쓰시는 걸까?
    아마 일기쓰는 버릇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런가요?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4 01:10 · MS 2012

    그냥 글 많이 읽고..

    평소에도 어떤글 쓸까.. 구상해요

    메모장에 계속 글 구상하는거 메모해두고

    사색하고 성찰하고.. ㅋㅋ

  • David Cho · 406257 · 14/02/03 23:51 · MS 2012

    고3 내내 비교하지말자 님 글 읽으면서 많은 생각 했는데.....
    글 잘 쓰는 분 너무 멋있으셔요 ㅎㅎ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4 01:10 · MS 2012

    공대생인데

    적성이 글쓰기 같아서

    요즘 사실 좀 혼란스러워요 ㅋㅋㅋ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4/02/04 01:23 · MS 2012

    근데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다섯번째 편을 봤는데
    우리나라학생들은 '질문'을 정말 안한다더라구요.. (사실 제가 그렇죠)

    저도 글쓰면서 피드백 받고 의견도 교환하고 하는데..
    '질문'을 받는 빈도수가 참 적어요.
    질문받아봤자 제 글의 의도에 연장선 정도고..

    소통님 글에 에쏀유로망님이 '감정과잉'이라고 하던데..
    전 약간은 불편한 댓글이더라구요.

    저 위에도 '머야 오글거리게'가 뭐에요 초딩도아니고 ㅋㅋㅋ

    우리나라는 너무 권위주의에 정형화된 답만 찾아가는 교육시스템때문에
    무언가에 반박하는 훈련을 너무 안했죠..

    분명 제 글에 가치 못느끼시고 그냥 흘려보내거나
    '아 오글거려' , '있어보일려고 잘난척하네'이런 생각하는 분도있잖아요.
    물론 이런 반박은 자기파괴적이라고 믿어요. 아무 목적없는 생각이니까.

    제가 스무살 이후의 삶을 '가능성과 막막함'어쩌구 그랬는데
    '아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글 잘쓰네~'로 끝나버리면
    그냥 새르비에서 이쁜여자사진보고 '이쁘네 여신여신!' 이러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점을 못느끼겠어요.

    제 생각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면 저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고맙고
    (스무살이후는 가능성 막막함은 개뿔! 우리 시대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시스템에 종속변수일 뿐이야! 체제 개선을 위해선 개개인의 노력보단
    기득권층의 변화혹은 생각이 모아진 대중이 시스템을 전복시켜야돼!
    이렇게 거칠게 생각하실수도 있고.. (좀 오바했나..?))

    아니면 비슷한 방향이라도 본인의 생에 적용시켜보고 제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어령선생님도 말씀하셨는데 제 글을 읽고 '생각' 해주시는 분이 가장 좋아요 사실.. ㅋ

  • ThMed · 374249 · 14/02/04 09:25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Lamy · 461221 · 14/02/04 21:58 · MS 2013

    나는 무분별한 도전과 경험은 유혹에 대한 굴복

    혹은 무지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편이다.

    이 문구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무지'라는 단어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전 성취하고 싶은 모든 일은 성취를 위한 최적의 지식을 갖고 있어아 햔다는 전제를 품고 있었는데.....
    그거 때문에 하고 싶었던 일도, 할 수 있던 일도 포기했던 기억들이 납니다.

  • 슬피우는새 · 365013 · 14/02/06 02:18 · MS 2011

    고3때 비교하지말자님글읽고 큰도움 받앗습니다 생각하게되엇고 성찰하는데도 큰도움이되엇습니다 정말개인적으로만나뵙고얘기하고싶은분이세여^^ㅎㅎ.재수를하게되엇습니다ㅜ1년동안 좋은글부탁드립니다ㅎ

  • 인비노베리타스 · 487166 · 14/02/09 13:29 · MS 2014

    현학적인것도 사실이에요 .
    글따뜻하고 좋은 것도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