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6-08-12 00: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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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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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내가 모든 걸 알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당신은 내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듣기 시작한다.

난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어쩔 때는 추악하게 묘사하며 세상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된 사실들을 일반화하며 당신에게 설명한다.

당신은 나의 묘사와 설명에 찬동하며 공감의 시선을 내게 보내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세상의 진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과연 그것은 믿을만한 것인가.

미안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설명한 진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내 설명은 서서히 논리성을 잃어가고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여기에서부터 내가 설파하고자 했던 진리는 허공에 흩날려진다.

당신은 다시 실망한다. 그 감정은 오히려 분노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기대가 가져다 준 배신감으로 인해...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하지만 당신은 나의 이야기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낯섬' 을 느낀다. 나의 이야기에 격렬하게 동의하다가도, 나와 공감하다가도 다시 멀어진다.

이것이다. 타인과 하나가 되려고 했을 때, 느껴졌던 기대와 무너진 기대가 주는 배신감.

당신은 고통스러워한다. 외로움에,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가느다란 두 팔로 몸을 감싼다.

자, 이제 당신 혼자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과연 어떤 방법이 있나.

첫번째로, 감정의 방법이 있겠다. 타인과 가깝게 느껴졌지만, 사실은 먼, 이런 '두꺼운 벽' 내지는 멀리 떨어져있는 외줄타기에 가까운 세상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다가오는 단단한 벽과 맞서서 분노하고, 슬퍼한다.

분노하며 맞선 벽이 금이 갔을 때는 기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벽은 너무나도 두껍다. 부숴질 수가 없다. 당신은 허무를 느낀다.

당신은 계속 긍정적으로 분노하며 저항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으로 포기할 것인지를 정한다.

허나,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들 바로 죽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율배반의 존재가 있다.

이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카뮈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철학적 이론과 그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비교하는 것은 상투적인 일이다. 그러나 삶에 의미가 없다고 굳게 믿는 사상가들 중에 그 삶을 거부할 정도로까지 자신의 논리를 밀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 이제 두번째로, 당신은 이성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벽을 재어보고, 판단과 행동을 유보한다. 이런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일 수는 없다. 완벽하게 이성적일 순 없다.

인간은 단단한 이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딱딱한 외피를 지닌 풍뎅이가 아니다. 연한 껍질을 지닌 과일이다.

다만 완벽에 '가깝게' 이성적일 수는 있다.

자,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완벽에 다다른 이성의 인간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의 이성은 자살을 명할 것인가, 아니면 긍정적 감정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인가.

그것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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