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은 고백 [531407] · MS 2014 · 쪽지

2016-02-21 20:34:00
조회수 2,028

첫사랑썰 초등학교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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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썰 초등학교편<1>

언제부터인가 A양은 뭔가 위에서 날 챙겨주는 듯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구박은 하지만 그래도 뭐 공부는 내가 더 잘했으니까하는 위안을 삼으며 내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4학년이 되었다. 딱히 달라진 포지션은 없다. A양은 여지없이 반장. 다만 나는 부반장 대신 명예어린이경찰(포돌이 포순이)이 되어 같이 일할 기회를 상실했다. 그 자리는 부반장이 된 친구몫이었다.(낙선한 게 아니라 포돌이 포순이는 학급 인원을 겸임하지 못한다.)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뭔가 질투심이 생기고 불안하고 괜스레 집착하게 되는 시기가.. 일부러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A양이 학급일이 끝나는 시간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그녀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틱틱대면서 주고받는 대화. 그 이상의 전개는 없었고 발전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5월 소운동회 날이었다.(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5월 어린이날 전후로 하여 소운동회 1번, 가을에 대운동회가 1번 열렸다.) 개인 달리기 시합에 참여한 나는 안타깝게도 넘어져서 모래에 심하게 쓸리고 말았다. 좀 심각하게 다쳐서 약간 일어서기가 힘들 정도였다. 결국 반장이었던 A양의 부축하여 보건실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 때는 그게 너무 부끄러웠고 쪽팔렸다. 괜찮냐는 질문에 대답도 못하고 도망치듯이 다시 운동장 스탠드로 향해 달려갔다. 그 날 이후부터는 모든 게 쪽팔리고 부끄러웠다. A양 앞에서는 태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제대로된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해 여름을 보냈고 2학기를 맞이했다. 2학기 때에도 온갖 부끄러운 기억 뿐이었다. 
아버지와 사우나를 가서 팔을 꼬집힌 자국을 보고나서 어머니께 그 사실을 알렸고 어머니는 곧장 학교 반으로 전화를 했다.(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반마다 전화기가 있었다.) 
전화를 받은 것은 반장 A양. 어머니의 추궁에 그녀는 본인이 했다고 말했단다. 그냥 축구하다가 다친건데..
또 한 번 그녀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11월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11월 전교 학생회의가 있던 날.(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생 회의는 포돌이 포순이, 각 반 회장 부회장, 전교 학생 어린이 회장 부회장이 참여한다.) 나는 거기서 빼빼로 데이날 빼배로를 주고받지 말자는 주장을 한다.(당시 파는 100원짜리 빼빼로가 유해물질이 들어있다는 보도가 오고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빼빼로 받아본 적도 없지?"
그리고 빼빼로 데이 당일 날
"너 왜 우리반이야 아 내가 먹는 게 훨씬 낫겠다"

그 시절 초등학생의 나에게는 그냥 A양이 날 정말 싫어하는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이제 다시 2월.. 알다시피 2월은 혼란의 시기다. 종업식을 앞두고 있고 수업도 안하고 그냥 반 분위기도 엉망이고 선생님도 우리를 훈육하는데는 큰 관심이 없는 시기다. 다시 말해, 반장만 고생하는 시기다. 
우리반도 마찬가지였다. 애들은 뛰어다니고 대걸레로 싸움을 하고 떠들고.. 카오스 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뛰어다니던 한 친구가 반을 꾸미기 위해 붙여 놓았던 색종이꽃 하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앞에서 같이 놀던 나는 엉겹결에 그 꽃을 주어다 A양에게 건냈다. A양은 말없이 그 꽃을 받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행인지 나는 A양과 5학년 6학년 때 같은 반이 아니었고 중학교도 서로 다른 곳에 배정받았다. 같은 아파트를 살았기에 가끔씩 버스 정류장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때만 해도 두발 검사라는 것이 있어서 학생들은 맵시를 내기 위해 단발머리를 이쁘게 자르고 다니곤 했다) 그 시기의 다른 일에, 또는 다른 감정에 휘말려 큰 감흥이 오지는 않았다.(참고로 3학년 이후 이사했다.)
그 후, 나는 전국단위 자사고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살게 되었고 A양은 근처 고등학교를 진학하였다. 나는 재수를 했고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시험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대학 입학을 확정지었다. 그녀는 재수없이 대학에 입학하여 현재 서울 남부의 모 대학에서 통계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저 하나의 희미한 추억처럼 내 초등학교 첫사랑은 조그만한 자국으로 남아가고 있었다. 

3일 전, 나는 대학교 OT를 다녀왔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감, 캠퍼스에 대한 설레임보다 먼저 찾아오는 수강신청에 대한 걱정. 여러가지 걱정거리를 안은 채 지하철을 타고 귀가 중이었다. 내릴 역이 되어 일어났다. 뒤에 서있던 베이지색 옷을 입은 여성이 지하철 창문을 통해 보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 여성.. 바로 A양이었다. 고작 한발자국 차이 창문 속에는 고개를 살짝 들고있는 나와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숙인 A양 둘 뿐이었다.. 순식간에 그려지는 지난 10여년 동안의 추억들... 나의 행동은 멈췄다. 
결정적인 골문 앞 슈팅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못하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어쩌면 최선의 수였을지도 모른다. 골이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다가올 실망감, 새롭게 쓰일 추억의 역사 혹은 골이 들어갔을 때 감당할 수 없을 승부의 결과라던가..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여전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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