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2년 말...
2003학년도 수능이 치러지고 며칠 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한 인물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김치국...
대전 한밭고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치국이 가채점 결과 자연계 수능에서 만점을 획득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이야 수능 만점이 한 학교에서 몇 명씩 쏟아져 나올 정도로 흔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수능 만점은 지극히 희귀한 존재였다)
기사에 따르면 불과 수능 몇 달 전인 3학년 1학기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모의고사 성적은 400점 만점에 290점 정도...
물론 지금과 같은 쉬운 수능 기조가 아닌 시절이라 290점이면 그렇게까지 실력이 낮은 것은 아니었으나 만점과는 현격한 격차가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랬던 그가 8월부터 사설 모의고사에서 100점 가까이 상승한 382점의 높은 점수를 받기 시작하더니,
그 해 처음으로 시행된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무려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해내며 이후 세 번이나 더 모의고사 만점을 받아내는 기적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참고로 2002년에 처음 시행된 9월 평가원 모의고사의 난이도는 매우 어려워, 문과 기준 378점이 전국 200등 안에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시험에서 무려 만점을 받아낸 것이다.
이것이 당시 인증된 김치국의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성적표라고 한다.
만점이다.
(당시 성적표에는 원점수가 표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후 식스센스급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수능 성적표가 발표된 이후 김치국의 이름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
2003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자는 없었다.
인문계 수석이자 전국 수석은 서현고의 윤재희로 394.5점을 얻어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자연계 수석은 포항고의 이훈훈으로 394.2점을 받아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했다.
참고로 같은 해에 오르비 창시자 lacri옹께선 382.5점으로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하셨다.
(서울대 자연계는 사회탐구 점수를 반영하지 않았고 lacri옹께선 사회탐구에서 8점이 깎였기 때문에 서울대식으로는 의예과 합격에 무난한 점수였다고)
그렇다면 대체 김치국은 어떻게 된 것일까?
가채점을 실수로 하여 만점을 받지는 못 했으나 그에 준하는 높은 성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서연고는 물론이고 그 어떤 의치한에서도 그에 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인터넷에서 대전 출신임을 밝힌 사람들에 의해 그에 관한 소문이 하나둘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성적표에 찍힌 그의 수능 점수가 200점대였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230점부터 290점까지 점수대는 다양했으나 대체로 200점대를 벗어나진 않았다.
그가 그대로 한밭대에 진학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재수학원에 가려 했으나 점수가 낮아 입학하지 못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모의고사 4연속 만점 기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소문에 의하면 이것 역시 사전에 답지를 빼돌려 만점을 기록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9월 평가원 모의고사조차도?
김치국...
그에 관한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와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수능 역사상 최고의 미스터리를 풀어주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닉값ㄷㄷ
사이시옷 추가해서 개명해야할듯
진짜 이름도 하필 김치국이여가지고는ㅋㅋㅋ
2015년도 글에도 존재했던 나는 도대체,,
와 신기하다 ㅋㅋㅋㅋㅋ
이름에 피식했네요.. 김치국..
김치국씨...
ㅈㅁ...ㄹㅇ임?
ㅋㅋㅋㅋ풍문으로 듣기에 김치국이라는게 사람들이 이런행동을 해서 붙혀준 별명인줄 알았는데 본명이었어 ㅋㅋ
ㅋㅋㅋㅋㄹㅇ
이거 그때 그 학교에 계셨던 선생님께 들었는데 소름..
김치국씨는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걸어 국가 스케일의 언어유희를 하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요? 십수년후에조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요.
ㅋㅋㅋㅋ 모든게 의도적이었던건가요 ㅋㅋㅋㅋ
ㅁ...모든 것은 계획대로!
이분이 '김치국부터 마신다'의 유래라고들었는데..
저도 이거 듣고 어이없더라구요ㅋㅋㅋㅋ 왜 하필 김치국이지 하면서 고민했는데 이거 때문이였음ㅋㅋ
으잌ㅋㅋㅋㅋ
ㅋㅋㅋㅁㅊ겠다
ㅋㅋㅋㅋ ㅋㅋㅋㅋ
이름이...처음에 장난인줄
김치국 이훈훈 ㅋㅋㅋ 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 ㅋㅋㅋ ㅋㅋ ㅋㅋㅋㅋ
이름 ㄷㄷ
참고로 저 9평 모의고사 언어는 그해 수능보다 더 고난도였습니다. 수능은 108점이 백분위가 99찍혀서 나왔고 9평은 100퍼가 찍혀서 나왔습니다. 6개틀리고 100퍼... ㅋㅋ 그리고 가장 놀라운건 저때 9평 과학이 참 미스테리할정도로 고난도였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 지구과학 관입문제였는데 관입이 다른 암석들과 나란하게 되서 지층누중법칙과 관입의 법칙 적용하기가 매우 힘든 문제였던걸로 기억하네요. 당시 통합과학계의 황제이자 메가스터디 창업자중 한명인 이범씨도 해설강의에서 어설픈 문제를 몇몇개 찍어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9평문제는 첫시행이다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다행히 수능은 오류없이 끝났죠...
근데 미스테리한건 대체 그 괴랄한 시험을 무슨수로 저친구가 다 맞았느냐 이겁니다. 저학생의 03 수능 원점은 약 255 변환표준점수는 280점대정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언어영역을 통째로 밀려써도 받을수 없는 점수인거죠. 그리고 그날 정말 미친듯한 컨디션 난조로 푸는것마다 실수하고 망했다 치죠. 근데 제 사촌동생말에 의하면 대전에 있는 재수학원 유시험도 통과못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03학번들에겐 정말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것 같습니다.
가장 그당시에 많이 떠돌던 유력핰 추측은 저 학생이 재학중이던 한밭고가 주변학교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자 실적을 올릴려고 전날 온(그 당시에 9평이 처음이어서 좀 보안이 어설펐을거라는 추측) 답안지를 미리 학생에게 유출했을거란 말이 많습니다.( 혹시 한밭고 학생 보시면 죄송합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당시 떠돌던 의견이었습니다.). 이건 후일담인데 한밭고 교장 대전교육지원청에 끌려서가서 시말서 썼다는 루머도 자자했답니다..... ㅋㅋㅋㅋ 진실은 저너머에...
본명이었엌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한가지 재밌는사실 추가... ㅋ 저때 이훈훈학생은 서울대 2차까지 있는데 1차 합격후 바로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ㅋㅋ 저도 기억나네요. 대전 사람들은 더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사건이죠 ㅋㅋ
이게 진짜 있던일?
네 가히 서프라이즈에 나올만하죠 ㅋㅋ
이름 보고 장난하시는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의 주변지인이라도 있을텐데
이후 이야기가 전혀 없네요ㅋㅋ
벌써 13년이 지났는데 김치국씨
지금은 뭐하실지...
아직도 팔리고 있는 대전의 자랑
김치국 ㅋㅋㅋㅋㅋ
김치국에 가려져 이훈훈에는 아무도 주목을 안하네ㅋㅋ이름이 훈훈ㅋㅋㅋ
이름이 김치국이라길래 동사서독님이 왜 어울리지 않게 낚시글을 올리시나 했는데ㄷㄷ;
진짜 그 4차례 모의동안 제갈량 빙의라도 했던걸까요
아 새벽에 읽으니 무섭잖아오
훈훈한 훈훈이 이름이 보이네요
의대 동기 이신가요? ㄷㄷ
이름대로 훈훈하게 생기셨나요? ㅋ
얼굴도 성격도 훈훈합니다 ㅎㅎ
헐... 다 가진 분이시네요. ㅎ
이래서 이름을 잘 지어야...
제 기억으론 저때부터 가채점 수석에 대한 언급을 언론에서 안하던걸로 기억하는데 맞죠? 01 02땐 그래도 수능다음날 가채점으로라도 누가 1등일거 같다 뉴스에 나왔던거 같은데... 물론 01은 좀 ㅋㅋㅋ
포항고재학생인데 박희현선생님이 선배님얘기정말많이한다고 존경한다고전해주시면감사하겟습니다ㅎ..
이훈훈 선배님 존경스럽습니다...
김치국이 더웃기네 ㅋㅋㅋㅋ
제목만 보고 올해 탐구 등급컷예측 심하게 빗나간거 말하는줄...
이 사건 기억나네요 ㅋㅋ
김치국ㅋㅋㅋㅋㅋ심지어 이훈훈ㅋㅋㅋ
저는 무슨 가명들인줄;;; 저때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이훈훈 김치국ㅋㅋㅋ
제목만 보고 이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네요 ㅎㅎ 그만큼 기막힌 사건.
이거 단체로 거짓말하는 거 같은 기분은 뭔가요 ㅠㅠ서프라이즈에 나오길 기대해야하나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