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 언어이해 관련 몇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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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올해 리트 언어이해 실응시 성적입니다. 인증하고 쓰면 색안경 조금이라도 덜 끼겠죠.
저는 올해 7월에 뒤늦게 수능판 들어온 대졸자 틀딱이고, 리트나 로스쿨을 딱히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로스쿨 원서도 쓰긴 쓸 것 같긴 한데.. 법조계 가고 싶은 생각이 솔직히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할지잘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수능 수험생으로서 국어를 공부하거나이원준t 관련 키배를 뜨는 등(?)의 상황에서 리트 관련 오해가 여럿보여 잡설을 조금 적어보려 합니다.
이하 내용에서 '리트'라고 하면 별도의 언급이 없다면 언어이해 영역을 이야기합니다. 추리논증 영역은 수능 수험생의 관심사가 아니니까요.
0. 수능 수험생이 접하는 리트 지문은 수능 수준에 맞게 선별된 것들이다
간혹 리트 풀어봤는데 쉽던데? 나는 수능 국어보다도 쉽더라.. 하는분들이 보이던데, 실제로 리트 최근 5개년 회차를 직접 뽑아서 시간 재고 풀어보신 분이 아니라면 이는 선별된 지문만 보고 리트 실제 난도를 오해하신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밋딧도 마찬가지로, 저도 수능용 책에 선별된 지문들 보면 거의 쉽다고 느낍니다..
다만 실제로 리트가 더 잘 맞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후술하겠습니다.
1. 리트의 출제기관
초기 몇 회차, 2011년까지는 평가원에서 출제했지만 이후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통칭 법전협에서 출제하고 있습니다. 밋딧도 초기에는 평가원이었다가 의치의학교육입문검사협의회로 출제기관이 바뀌었습니다. 아마 밋딧은 바뀌고 나서 언어추론이 사라졌을 겁니다.
의외로 리트가 그냥 평가원 시험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꽤 있으시더라고요.
2. 리트의 지문 제재
현행 교육과정 또는 수능 출제 방침상 독서 제재는
인문•예술, 사회•문화, 과학•기술
셋으로 나뉩니다. 반면 리트는
인문, 사회, 과학•기술, 규범
의 넷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규범"은 법학 및 윤리학 지문을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법학 및 윤리학 지문은 사회나 인문으로 취급하지 않고 따로 떼서 더 중요시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더 깊게 들어가겠죠?
3. 리트와 배경지식
리트는 대졸자 대상 시험으로 응시자에게 더 높은 상식 및 배경지식 수준을 전제하고 출제합니다. 배경지식 같은 거 안 중요하고 소위 '본질적 독해력'을 기르는 것만이 해법이라는 분들이 종종 보이던데 수능 범주에서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리트는 특히 더합니다. 내가 모르는 제재, 모르는 소재와 주제는 읽어내고 풀어내는 데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출제기관인 법전협에서 발간한 공식 가이드라인에서 리트 응시생 다수가 문과생인데 의식적으로라도 과학기술 관련 글 많이 읽고 공부하라고 적어놓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영역이긴 하지만 지능검사 중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갖고 법적으로 인정되는 웩슬러 지능검사에서도 지능을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의 4영역으로 나누는데(4판 기준), 이 중언어이해를 측정하는 3~4가지 소검사 중 하나가 '상식'입니다. 지능 평가 요소에 상식이 들어간다는 것은 일견 비직관적이지만, 같은 영역의 '어휘' 소검사와 함께 전체지능과의 상관관계가 큰 소검사라고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격언이 아니죠.
이야기가 딴 데로 샜는데, 돌아오자면 그래서 매 회차마다 배경지식 유불리가 큰 지문이 무조건 있습니다.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철학과, 경제학과, 생물학과를 3대 적폐라고도 부르더라고요. 저 세 학문에서 글이 많이 출제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올해 리트의 솔로우 모형 지문도 '경제학과 고학년이거나 고시를 했다면 안 배웠을 수가 없는 내용'이라고 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리트 수험생들 중에는 특히 과학 쪽 배경지식 공부를 따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과학노베 찐문과생 기준) 실제로 유효한 전략입니다. 과거 기출 중엔 생2 배웠으면 절반 이상은 알고 들어가는 산화적 인산화 지문도 있었죠. 추리논증 영역도 최후반부 4문제 정도가 과학기술추론으로 출제되는데 마찬가지로 배경지식 있으면 날먹하기 좋은 문제들이 출제됩니다. 사실 언어이해는 지식이 있어도 날먹은 힘든데 추논 과기파트는 이과생이라면 진짜 5초컷 가능한 날먹들도 꽤 있어요..
4. 리트와 시험지 운용
언어이해만 다룹니다.
몇 차례의 소소한 개정을 거쳐 현재는 비문학 1지문 3문제씩 10지문 30문제로 고정입니다. 시간은 70분입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1쪽의 첫 번째 지문은 글도 문제도 쉽게 내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내용들에 비해 좀 더 주관적인 서술이라 다소 조심스럽습니다만, 수능 국어의 경우 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대응을 통해 빠르게 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가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리트는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않으면 문제를 맞히기 어렵게 출제합니다. 수능 독서가 '내용'을 세부적으로 정확하게, (사실적이든 추론적이든) 잘 독해했는가를 묻는다면 리트 언어이해는 글의 주제와 '본질'을 '이해'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수능 국어보다 리트가 더 잘 맞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10지문 70분이라고 너무 서두르다가는 다 썰리기 딱 좋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리트 수험생들은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지문을 다 보기보다 한두 지문을 버리는 전략을 택합니다. 제 예전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는데, 앞의 전략을 택한 사람 중에 저보다 잘 본 사람(들)도 당연히 있습니다. 일단 제 친구도 그렇습니다. 올해 리트가 쉬운 편이었음에도, 두 지문 버리고 나머지 다 맞히면 24맞 6틀인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백분위 90은 될 걸요?상위권입니다. 한 지문 버리고 27맞은 말할 것도 없는데다, 찍맞도 있을 수 있으니 적지 않은 수험생들이 이런 전략을 택하고, 특히 문과생이 과학기술 지문 하나 버리는 건 흔합니다.
요약하면, 전체적으로 수능 국어 영역과는 시험지 운용이 많이 다릅니다. 피샛 언어논리는 더 많이 다릅니다.
5. 점수대와 운
리트는 배점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동등하게 계산됩니다. 그래서 자기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알기 전까지 보통 맞힌 개수로 점수를 말합니다.
구글에 리트 표준점수를 검색해보시면 역대 리트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확인하실 수 있는데, 특정 점수대에 응시자가 정말 많이 몰려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밀집구간에서는 한 문제당 백분위가 9씩 바뀝니다. 난도가 낮았던 23언어 같은 경우 17개와 20개의 백분위차가 25를 넘어갑니다. 백분위 90을 상회하는 높은 점수대나 백분위 40을 하회하는 낮은 점수대라면 몰라도, 이런 점수대에서 하나 더 맞히고 말고가 실력이 더 클까요, 운이 더 클까요?
덕분에 찍맞 2개 이상, 혹은 그에 반대되는 불운은 성적에 매우 크게 반영됩니다. 하물며 내가 이미 잘 아는 소재가 나와서 쉽게 풀었는데 남들한테는 어려운 지문이 있었다면 운의 영향은 더욱 극대화되겠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리트 언추 표준점수 합 105~120점의 중하위권에서 운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그 이상의 상위권이나 최상위권에게도 당연히 큽니다. 안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있지만, 안정적으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진 강한 의문이 들어요. 매 회차마다 시험 스타일 차이도 꽤 커서, 한번 잘 나올 때까지 가챠 돌리듯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5-1. 강사는 잘 볼까?
수능 국어판에서도 강사들 국어 보면 100 나오냐는 힐난의 여론이 있지만, 리트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리트는 특히 올해 재밌는 일이 있었습니다.
노형석이라는 16리트 언어이해 만점자 출신 강사께서 시험이 끝나고 공식 답안이 올라오기 전에 먼저 가답안을 게시했습니다. 근데 공식 답안 나오고 까보니 가답안에서 언어 4개, 추리 8개가 틀렸습니다. 시험 끝나고 바로 게시한 것도 아니고 대략 4~5시간 뒤에 올린 데다 조교들이랑 같이 연구하고 올린 것일텐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이 틀렸어서 그래도 용감하고 정직하다, 다른 강사는 이렇게도 못한다 vs 그 실력이면 가르칠 실력이 아니다 접어라 로 말이 많았죠. 특히 언어 4개(백분위 98.5~99 정도)는 그렇다 쳐도 추리 8개는 수험생의 입장에서도 막 잘 본 점수조차 아니어서 더 그랬습니다.
노형석 선생님은 16리트 언어이해 만점, 추리논증 백분위 98로 이미 인증된 성적까지 있는 강사였기에 여파가 더욱 컸습니다. 더 옛날인 1회 딧 언어추론 수석인 이원준 선생님도 이런 식의 의혹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매회 응시하고 인증하는 강사도 없고, 공식 답안 나오기 전까지 올라오는 (법률저널 등) 사교육 가답안에 반드시 오답이 있는 시험이 리트니까요.
6.
그래서 이 글을 왜 썼을까요..? 저도 목적을 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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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실응시 때 추리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 왔더니..
예년에는 지문 길이가 길어서 몇 지문을 버리게 된다는 불만 사항이 있었다. 이를 반영해 지문 길이를 줄이면, 지문이 불친절해지거나 배경 지식이 더 많이 요구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헤어의 공리주의를 다룬 14번 선지 ③은 올해 가장 많은 이의제기가 이루어진 문항이다. 필자가 보기에 출제 오류는 아니지만,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 권리론’은 지문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배경 지식 없이 지문만 읽고 선지를 도출하는 것은 어렵다. 선지를 만든 후 지문 길이를 줄이기 위해 관련 내용을 생략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 지식이 요구된다고 해서 출제 오류는 아니지만, 지문의 길이를 줄이면서도 선지에 나온 개념을 지문에 언급하는 정도의 배려는 필요하다고 본다.
- 원준t 25리트 언어이해 총평 일부
수능생 대상 선별에서 제외되는 지문들 중엔 이런 평을 받는 것들도 있다는 점 보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