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붕 [1088532] · MS 2021 · 쪽지

2022-06-09 19:32:07
조회수 4,954

2022년 고3 6월 모의고사 독서 주제통합 역사서 지문(4~9)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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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진짜 교육, 진교의 김양붕입니다.


4~9번 지문은 전형적인 인문 주제통합 지문이었습니다. 정보량이 많지 않고, 인문 지문에서 주로 다루는 '개념'에 대한 부분도 크게 어렵지 않았구요. 다만 지문에 생소한 단어들이 많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 이론 지문에서 '어휘력'에 대해 다룬 것이 어쩌면 일종의 암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가) [1문단]

▷ 전국 시대의 혼란을 종식한 진은 분서갱유를 단행하며 사상 통제를 기도했다. 당시 권력자였던 이사에게 역사 지식은 전통만 따지는 허언이었고, 학문은 법과 제도에 대해 논란을 일으키는 원인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전국 시대의 『순자』처럼 다른 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통합 학문의 틀을 보여 준 분위기는 일시적으로 약화되었다. 이에 한 초기 사상가들의 과제는 진의 멸망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기초한 안정적인 통치 방안을 제시하며, 힘의 지배를 숭상하던 당시 지배 세력의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제에 부응한 대표적 사상가는 육가였다.


▶ 앞으로 지문에서 다룰 내용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꽤 나와 있습니다.

진나라 이사: 역사, 학문은 별로 안 중요함.

전국시대 『순자』: 다른 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통합 학문의 틀을 보여 줌

한나라 초기 사상가들의 과제: 진의 멸망 원인 분석, 안정적인 통치 방안 제시, 지배 세력의 태도 극복

=> 대표 사상가: 육가



(가) [2문단]

▷ 순자의 학문을 계승한 그는 한 고조의 치국 계책 요구에 부응해 『신어』를 저술하였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진의 단명 원인을 가혹한 형벌의 남용, 법률에만 의거한 통치, 군주의 교만과 사치, 그리고 현명하지 못한 인재 등용 등으로 지적하고, 진의 사상 통제가 낳은 폐해를 거론하며 한 고조에게 지식과 학문이 중요함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지식의 핵심은 현실 정치에 도움을 주는 역사 지식이었다. 그는 역사를 관통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천문, 지리, 인사 등 천하의 모든 일을 포괄한다는 ㉠통물과, 역사 변화 과정에 대한 통찰로서 상황에 맞는 조치를 취하고 기존 규정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통변을 제시하였다. 통물과 통변이 정치의 세계에 드러나는 것이 ㉢인의라고 파악한 그는 힘에 의한 권력 창출을 긍정하면서도 권력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왕도 정치를 제안하며 인의의 실현을 위해 유교 이념과 현실 정치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 이번 문단은 꽤 어렵습니다. 우선 ㉠㉡㉢ 표시가 되어 있는 통물, 통변, 인의의 의미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넘어가셔야 합니다. 또한 육가에 대한 내용을 1문단과 관련지어 읽어주시면 좋습니다.

1문단에서 이사는 역사, 학문을 중요하지 않다고 한 반면, 육가는 '한 고조에게 지식과 학문이 중요함을 설득하고자' 했고, 육가에게 지식의 핵심은 '현실 정치에 도움을 주는 역사 지식'이었다고 합니다. 완전 반대죠.

또 한 가지, 육가는 '힘에 의한 권력 창출을 긍정'했다고 하는데, 이런 포인트는 기억해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육가는 힘에 의한 권력 창출을 지양하고 ~'와 같은 함정 선지로 나올 수 있거든요.


아마 2문단의 마지막 문장에서 힘들어 하신 분들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조금 쉬운 지문이라면, '권력 대신 다른 걸로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럼 대놓고 말해줬을 법 하거든요. 그렇지만 2문단에서는 '권력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왕도 정치', '인의의 실현', '유교 이념과 현실 정치의 결합'과 같은,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서술들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선 '대상'만 설정하고 넘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독서 지문인 이상 뒤에서라도 설명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죠. 대상을 설정한다는 건, 빈 문서를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독서 지문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저장합니다. 1문단을 예로 들면 우리는 '진나라 이사'라는 이름의 문서를 만들고, 안에 '역사와 학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함.'이라고 적은 거죠.

다만 이번에 만들 '육가가 제안한 정치'라는 문서는 비워두는 겁니다. 이후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 채워넣을 수 있게요. 이렇게 빈 문서를 만들어두지 않는다면, 이후에 '육가가 제안한 정치'에 대한 설명이 나오더라도 이걸 연결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가 정보를 얻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꼭 인지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가) [3문단]

▷ 인의가 실현되는 정치를 위해 육가는 유교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타 사상을 수용하였다. 예와 질서를 중시하며 교화의 정치를 강조하는 유교를 중심으로 도가의 무위와 법가의 권세를 끌어들였다. 그에게 무위는 형벌을 가벼이 하고 군주의 수양을 강조하는 것으로 평온한 통치의 결과를 의미했고, 권세도 현명한 신하의 임용을 통해 정치권력의 안정을 도모하는 방향성을 가진 것이었기에 원래의 그것과는 차별된 것이었다.


▶ 다행스럽게도 이 지문에서는 '대상'에 대한 설명이 바로 나옵니다. 육가가 제안한 정치, 즉 인의가 실현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볼게요.


유교 + 도가 + 법가 (단, 유교를 중심으로)

유교: 예와 질서를 중시, 교화의 정치 강조

도가(무위): 가벼운 형벌, 군주의 수양 강조 => 평온한 통치의 결과

법가(권세): 현명한 임용, 정치권력의 안정 도모

(단, 무위와 권세는 원래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 정도로 정리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육가는 유교를 중심으로 도가와 법가의 사상을 변형하여 수용했습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표현 아닌가요? 1문단에서 전국시대의 『순자』는 다른 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통합 학문의 틀을 보여줬다고 했죠.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일시적으로 약화되었다고도 했구요. 이런 유사성도 문제에 언급될 수 있으니 체크하는 습관을 들이시면 좋습니다.



(가) [4문단]

▷ 육가의 사상은 과도한 융통성으로 사상적 정체성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군주의 정치 행위에 따라 천명이 결정됨을 지적하고 인의의 실현을 강조한 통합의 사상이었다. 그의 사상은 한 무제 이후 유교 독존의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하였다.


▶ 독서 지문에서 정말 자주 나오는 한계+의의 문단입니다.

사상적 정체성이 문제가 되지만 저런 의의가 있다더라~ 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나) [1문단]

▷ 조선 초기에 진행된 고려 관련 역사서 편찬은 고려 멸망의 필연성과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편찬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려와 조선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고려보다 조선이 뛰어남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 (나)에서는 조선으로 넘어 옵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고려 관련 역사서 편찬의 목적' 정도만 체크하고 우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 [2문단]

▷ 태조의 명으로 고려 말에 찬술되었던 자료들을 모아 고려에 관한 역사서가 편찬되었지만, 왕실이 아닌 편찬자의 주관이 개입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이에 태종은 고려의 역사서를 다시 만들라는 명을 내렸다. 이후 고려의 용어들을 그대로 싣자는 주장과 유교적 사대주의에 따른 명분에 맞추어 고쳐 쓰자는 주장이 맞서는 등 세종 대까지도 논란이 계속되었지만, 문종 대에 이르러 『고려사』 편찬이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역사 연구에 관심을 기울인 세종은 경서가 학문의 근본이라면 역사서는 학문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집현전 학자들과의 경연을 통해 경서와 역사서에 대한 이해를 쌓아 갔다.


▶ 사실 마지막 문장 빼고는 흐름상 크게 중요한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종에게 있어서 '경서=학문의 근본', '역사서=학문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라는 점이요. 여기서 (가)의 2문단을 떠올리시면 좋습니다. 아주아주 비슷한 표현이 있었거든요.

'그에게 지식의 핵심은 현실 정치에 도움을 주는 역사 지식이었다.'

육가와 세종 모두 역사와 현실(좀 더 나아가면 정치)을 관련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 [3문단]

▷ 이런 분위기에서 세종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흥망성쇠를 담은 『치평요람』의 편찬을 명하였고, 집현전 학자들은 원까지의 중국 역사와 고려까지의 우리 역사를 정리하였다. 정리 과정에서 주자학적 역사관이 담긴 『자치통감강목』에 따라 역대 국가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구분했지만, 편찬 형식 측면에서는 강목체를 따르지 않았다. 또한 올바른 정치의 여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다하고 천명이 옮겨 간다는 내용을 드러내고자 기존 역사서와 달리 국가 간 전쟁과 외교 문제, 국가 말기의 혼란과 새 국가 초기의 혼란 수습 등을 부각하였다.


▶ 『치평요람』과 『자치통감강목』의

공통점: 역대 국가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구분

차이점: 편찬 형식

이런 공통점과 차이점은 꼭 정리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출제자 입장에서 문제 내기 좋거든요.


여기에 더해 『치평요람』은 '올바른 정치의 여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다하고 천명이 옮겨 간다는 내용'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나) [4문단]

▷ 이러한 편찬 방식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거울삼아 국가를 잘 운영하겠다는 목적 이외에 새 국가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전제된 것이었다. 이런 의도가 집중적으로 반영된 곳은 『치평요람』의 「국조」 부분이었다. 이 부분의 편찬자들은 유교적 시각에서 고려 정치를 바라보며 불교 사상의 폐단을 비롯한 문제점들을 다각도로 드러냈고, 이를 통해 유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하였다. 이성계의 능력과 업적을 담기는 했지만 이것이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기에는 불충분했기에 세종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조선 왕조의 우수성을 부각한 『용비어천가』의 편찬을 지시했다. 이는 왕조의 우수성과 정통성을 경전과 역사의 다양한 근거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 편찬 방식에 목적과 의도가 있었고, 그것이 「국조」에서 드러나며, 이를 통해 유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했다.

조선 왕조의 우수성을 부각하기 위해 『용비어천가』의 편찬을 지시했다.

요 정도인 것 같네요.




[문제 4] ★2

▷ 두 글의 구조를 비교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이런 문제는 선지를 두 부분으로 나눠서, 두 부분이 모두 맞는지 확인하셔야 해요. 어려운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① (가)는 한에서, (나)는 조선에서 쓰인 책을 설명하고 있으니 / 시대 상황과 사상이 책에 반영된 양상을 비교하며 읽는다.

▶ (가)는 한에서 쓰인 『신어』에 대해, (나)는 조선에서 쓰인 『치평요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니 앞 부분은 맞습니다. 또한 (가)와 (나)에는 각 시대 상황과 사상이 책에 반영되는 양상이 드러나니 뒷 부분도 맞구요.


② (가)는 피지배 계층을, (나)는 지배 계층을 대상으로 한 책을 설명하고 있으니 / 예상 독자의 반응 양상을 비교하며 읽는다.

▶ 앞 부분까지만 읽으면 더 이상 안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가)가 피지배 계층을 대상으로 한 책을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죠. 오히려 나라를 다스리는 일, 즉 치국에 대한 책입니다.


③ (가)는 동일한 시대에, (나)는 서로 다른 시대에 쓰인 책들을 설명하고 있으니 / 시대에 따른 창작 환경을 비교하며 읽는다.

▶ (가)는 전국 시대의 『순자』, 한나라의 『신어』, 즉 서로 다른 시대에 쓰인 책들을 설명하고 있고, (나)는 조선 시대에 쓰인 『고려사』, 『치평요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니 탈락입니다.


④ (가)는 학문적 성격의, (나)는 실용적 성격의 책을 설명하고 있으니 / 다양한 분야의 책에 담긴 보편성을 확인하며 읽는다.

▶ (가)의 육가와 (나)의 세종 모두 역사를 현실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⑤ (가)는 국가 주도로, (나)는 개인 주도로 편찬된 책들을 설명하고 있으니 / 각 주체별 관심 분야의 차이를 확인하며 읽는다.

▶ 『고려사』와 『치평요람』 모두 국가의 주도로 편찬되었으니 틀렸습니다. 『신어』는 육가 개인이 저술하였다고는 했지만 '한 고조의 치국 계책 요구에 부응해' 편찬되었다고 하니... 제 입장에서는 조금 애매하네요. 하지만 (나)에 대한 설명이 틀렸으므로 탈락입니다.



[문제 5] ★1

▷ 내용 일치 문제입니다. 그것도 쉬운.


① 진의 구너력자인 이사는 역사 지식과 학문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 다시 되돌아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는 선지입니다. 1문단에서 이사는 '역사=허언', '학문=논란의 원인'이라고 했죠.


② 전국 시대에는 『순자』처럼 여러 사상을 통합하려는 학문 경향이 있었다.

▶ 마찬가지로 다시 돌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1문단에 나와있구요.


③ 『치평요람』은 『자치통감강목』의 편찬 형식에 따라 역대 국가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 이것 역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문을 읽으면서 정리했다면 '저 둘은 편찬 형식이 다르다'는 내용이 머릿속에 있을 거예요. 역대 국가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구분한 것은 맞지만 편찬 형식은 강목체를 따르지 않았다고 했으니 3번이 정답입니다.


④ 『치평요람』의 「국조」는 고려의 문제점들을 보임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을 드러내었다.

▶ 「국조」의 편찬자들은 고려 정치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드러냈고, 이를 통해 유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했다고 했으며 선지 역시 같은 말입니다.


⑤ 『용비어천가』에는 조선 왕조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 확인 안 해도 되겠죠??



[문제 6] ★3

▷ 육가의 견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어려울 수 있는 문제입니다만, 선지 구성이 몹시 친절해서 의외로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4번 선지가 정답이라는 것을 찾기는 조금 난해할 수도 있으나 나머지 선지가 명확히 틀렸음을 알 수 있거든요. 우선 ㉠~㉢에 대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선지를 살펴보죠.

㉠통물: 역사를 관통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천하의 모든 일을 포괄

㉡통변: 상황에 맞는 조치를 취하고 기존 규정을 고수하지 않음

㉢인의: 통물과 통변이 정치의 세계에 드러나는 것

여기서 한 가지, 통물과 통변에 대한 언급은 2문단이 끝이지만, 인의에 대한 설명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그러니 인의와 관련된 선지는 2문단 이후의 내용까지 잘 읽어주시는 게 좋겠죠!?


① ㉠은 역사 속에서 각광을 받았던 학문 분야들의 개별적 특징을 이해한 것이다.

▶ 통물의 핵심은 '자연의 이치', 그리고 '포괄'입니다. 개별적 특징과는 거리가 멀죠?


② ㉡은 도가나 법가 사상을 중심 이념으로 삼아 정치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 중심 이념은 유교라고 했으니 2번 선지는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③ ㉢은 현명한 신하의 임용과 엄한 형벌의 집행을 전제로 한 평온한 정치의 결과를 의미한다.

▶ '현명한 신하의 임용'은 권세, '평온한 정치의 결과'는 무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한 형벌'은요? 탈락입니다.


④ ㉢은 군주가 부단한 수양과 안정된 권력을 바탕으로 교화의 정치를 펼쳐야 실현되는 것이다.

▶ '부단한 수양'은 무위, '안정된 권력'은 권세에 대한 설명에 해당합니다. '교화의 정치'는 유교에서 강조하는 것이구요. 육가는 인의가 실현되는 정치를 위해 유교를 중심으로 도가의 무위와 법가의 권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정답은 4번이 됩니다.


⑤ ㉠과 ㉡은 역사 지식과 현실 정치를 긴밀히 연결하여 힘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 뭔가 난해해서 설명하기도 어려운 선지입니다. 육가는 '통물과 통변이 정치의 세계에 드러난 것이 인의'라고 했으므로 '통물과 통변은 역사 지식과 현실 정치를 긴밀히 연결한다'는 서술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통물과 통변은 현실 정치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죠. 또한 육가가 힘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을 긍정했지만 이것을 통물, 통변, 인의와 관련짓지는 않았으므로 틀린 선지라고 판단했습니다.



[문제 7] ★1

▷ 코멘트할 내용도 없는, 단순한 내용 일치 문제입니다.


ㄱ. 옛 국가의 역사를 거울삼아 새 국가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도록 한다.

▶ 육가는 진의 단명 원인을 지적했고, 진의 사상 통제가 낳은 폐해를 거론하며 한 고조에게 지식과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거울삼아 국가를 잘 운영하겠다는 목적 + 새 국가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려고 했구요.


ㄴ. 옛 국가의 멸망 원인은 잘못된 정치 운영에 있지 않고 새 국가로 천명이 옮겨 온 것에 있다.

▶ 육가가 지적한 진나라의 단명 원인은 가혹한 형벌의 남용, 법률에만 의거한 통치 등인데 모두 정치 운영에 관련된 것입니다. (나)에서는 대놓고 '올바른 정치의 여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다하고 천명이 옮겨 간다는 내용을 드러내고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ㄷ. 옛 국가에서 드러난 사상적 공백을 채우기 위해 새 국가의 군주는 유교에 따라 통치하도록 한다.

▶ 육가는 '진의 사상 통제가 낳은 폐해'를 거론했다고 했습니다. 나라에서 사상을 통제하게 되면 공백이 생길거라 추론할 수 있구요. 하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불교 사상의 폐단을 비롯한 문제점들을 다각도로' 드러냈습니다. 즉, 옛 국가인 고려에 사상적 공백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거죠. 불교가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이 문제의 유일한 함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 8] ★2

▷ ㄱ~ㄷ의 핵심을 파악하고 지문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이해한다면 쉽게 풀리는 문제였습니다.

<보기>

ㄱ. 대부분 옛일의 성패를 논하기 좋아하고 그 일의 진위를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 하지만 진위를 분명히 한 후에야 성패가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역사 서술의 근원인 자료를 바로잡고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 ㄱ의 핵심은 '진위를 분명히', '자료를 바로잡고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ㄴ. 고금의 흥망은 현실의 객관적 형세인 시세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며, 사림의 재주와 덕행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하의 일은 시세가 제일 중요하고, 행복과 불행이 다음이며, 옳고 그름의 구분은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이다.

▶ 이걸 보고 (나)의 3문단을 떠올리시면 아주 좋습니다. '흥망=국가의 운명', '객관적 형세, 시세=천명', '재주와 덕행=올바른 정치의 여부' 이렇게 매칭시킬 수 있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거든요.


ㄷ. 도의 본체는 경서에 있지만 그것의 큰 쓰임은 역사서에 담겨 있다. 역사란 선을 높이고 악을 낮추며 선을 권면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이다.

▶ '경서'라는 단어는 (나)의 2문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경서'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이거 여기쯤에서 본 것 같은데?"하고 떠올릴 수 있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세종은 경서=학문의 근본, 역사서=학문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죠. 이걸 바탕으로 ㄷ과 (나)를 연관시켜 보자면 '도의 본체=학문의 근본', '그것의 큰 쓰임=학문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① ㄱ의 관점에 따르면, 『신어』에 제시된 진의 멸망 원인에 대한 지적은 관련 내용의 진위에 대한 명확한 판별 이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겠군.

▶ ㄱ의 핵심과도 유사한 맥락이고 크게 문제될 내용은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② ㄱ의 관점에 따르면, 『고려사』 편찬 과정에서 고려의 용어를 고쳐 쓰자고 한 의견은 역사 서술의 근원인 자료를 바로잡고 깨끗이 하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

▶ '고려의 용어를 고쳐 쓰자'는 주장은 유교적 사대주의에 따른 명분에 맞춘 것이라는 내용이 (나)의 2문단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료를 조작하는 거죠. 그러니 틀렸습니다.


③ ㄴ의 관점에 따르면, 『치평요람』에 서술된 국가의 흥망은 그 원인이 인물들의 능력보다는 객관적 형세인 시세의 흐름에 있다고 보아야겠군.

▶ 헷갈릴 수도 있지만, 선지의 표현을 정확히 읽어 내셔야 합니다. 『치평요람』은 '올바른 정치의 여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다하고 천명이 옮겨 간다'고 했습니다. ㄴ은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죠. 그렇지만 3번 선지의 핵심은 국가의 흥망에 대한 ㄴ의 관점입니다. 『치평요람』의 관점과 관련지으시면 안 돼요. '(『치평요람』에 서술된) 국가의 흥망'과 같은 형식으로, 괄호 안의 내용이 '국가의 흥망'을 수식하는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ㄴ에서는 재주나 덕행은 흥망과 상관없고 객관적 형세인 시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으니 맞는 선지입니다.


④ ㄷ의 관점에 따르면, 『신어』에 제시된 진에 대한 비판은 악을 낮추고 징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군.

▶ 개인적으로 ㄷ의 핵심은 첫 문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선지로 활용한 것 같아 아쉽지만 틀린 내용은 없으니 넘어갑니다.


⑤ ㄷ의 관점에 따르면, 『치평요람』 편찬과 관련한 세종의 생각에서 학문의 근본은 도의 본체에, 현실에서 학문의 구현은 도의 큰 쓰임에 해당하겠군.

▶ 위에서 보기를 분석할 때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문제 9]

▷ 어휘 문제는 생략하겠습니다.




반응이 좋다면 남은 두 지문도 업로드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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