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과 개연성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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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T 언어논리 지문 보다가 생각난 아이디어 한 번 써 봅니다. 머리 쥐 난 것도 좀 식힐 겸 해서요.
아는 분들도 계실 거고 모르는 분들도 계실 거지만 추리 및 논증에서 '타당성'과 '개연성'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중고등학교 국어에서 말하는 '타당성'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타당한 추리(논증) : 전제가 모두 참이면, 결론이 100% 참이 되는 추리(논증)
개연성이 높은 추리(논증) :전제가 모두 참이면, 결론이 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추리(논증)
타당한 논증의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타당한 논증의 사례 1)
전제 1 : 동혁이는 사람이다.
전제 2 : 모든 사람은 생명체이다.
결론 : 동혁이는 생명체이다.
(타당한 논증의 사례 2)
전제 : 2022년 1월 13일은 목요일이다.
결론 : 2022년 1월 14일은 금요일이다.
위 논증들을 보시면 전제가 맞을 경우 당연히 결론이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논리적 형식' 또는 '언어적 정의'에 의해 '전제가 맞으면 결론이 반드시 맞는 관계'가 자동적으로 형성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사례 1) 같은 경우 'A는 B이다. B는 C이다. 따라서 A는 C이다.' 는 A, B, C 자리에 어떤 대상을 대입하든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례 2) 같은 경우 '1월 13일', '목요일', '금요일' 등의 언어적 의미에 의해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참인 관계가 자동적으로 성립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개연성'은 논증의 형식이나 언어적 약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성립하지 않고, 직관적인 판단력을 필요로 합니다.
(개연성이 높은 논증의 사례 1)
전제 1 : 상원이는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다.
전제 2 : 상원이는 머리가 좋다.
결론 : 상원이는 수능을 잘 볼 것이다.
(개연성이 높은 논증의 사례 2)
전제 1 : 오늘은 여름방학 시즌이다.
전제 2 : 오늘은 토요일이다.
결론 : 오늘 워터파크에 가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례 1) 같은 경우 상원이가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고, 똑똑하더라도, 수능 당일 컨디션이 안 좋다든가 수능최저 없는 수시전형에 합격을 했다든가 등의 이유로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지 못할 가능성이 남아있습니다. (사례 2)의 경우에도 여름방학 시즌이고 토요일이지만 사람들이 갑자기 워터파크를 싫어하게 됐거나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20만명이 나와서 워터파크가 폐쇄되는 등의 이유로 워터파크에 사람이 적거나 없게 되는 상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두 사례 모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 직관적으로 판단하기에 결론이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게 과연 개연성이 높은 추리인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판단이 모호하므로 '판단자의 직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개연성이 높은 추리'에 대해 실제 지문과 문제를 가지고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2013년도 외교관후보자 1차 언어논리 인책형 1번 문제입니다.
일단 답은 1번입니다. ㄱ은 2문단 13문장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범윤은 ...시도하였다.")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내용이고, ㄴ은 '간도에서 세금을 징수했다'는 내용도 있고 내부대신 김규홍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으나 김규홍의 건의에 의해 세금을 징수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도출할 근거가 없습니다.
ㄷ에 대한 판단이 문제되는데, 2문단 10~12문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청은 한청통상조약에 의거하여 이범윤의 소환을 요구했으나, 박제순은 이범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소환에 반대했다."
여기서 ㄷ의 내용이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는 '한청통상조약'이 '청이 이범윤 소환을 요구한 근거'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1) 한청통상조약은 '소환의 근거가 되는 조항'과 '소환 반대의 근거가 되는 조항'이라는 이질적인 내용의 조항들을 포괄하고 있다.
(2) 박제순은 한청통상조약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는 심신미약자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직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실제로 성립할 가능성은 낮은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한청통상조약은 '이범윤 소환의 근거'이므로 박제순은 이범윤 소환에 대해 반대할 때 한청통상조약을 근거로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직관적인 판단에 의해 개연성이 높은 추리를 한 결과, ㄷ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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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T 언어논리 지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수능 국어에서도 '직관에 의한 판단을 통한 개연성이 높은 추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수학이나 형식논리학이 아닌 일상 언어를 다루는 과목의 특성상 '타당한 추리'보다는 '개연성이 높은 추리'를 요구하는 비중이 더 높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고력과 학습능력을 갖춘 상위권 학생들 중 많은 학생들(특히 이과 학생들)이 수능 국어 과목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수학처럼 답이 100% 명확하게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모호한 판단을 해야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죠. 위에서 언급했듯 어느 정도는 여러분의 직관적 판단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과목이기도 합니다.
무책임한 말이지만, 그러한 직관적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제를 많이 접하고 부딪혀보면서 평가원에서 어떤 사고방식과 판단 기준을 요구하는지 체득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 중요한 아니라, 문제 하나하나 선택지 하나하나 철저히 검증하고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위에서 특히 이과 학생들이 수능 국어를 어려워한다는 언급을 잠깐 했었는데, 국어를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어렵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가르치기도 하고요(모호하고 추상적으로 국어를 가르치는 게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논리적 판단을 선호하지 않는 학생들 대상으로는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교육 방식은 다 다르니까요.).
제가 쓴 다른 글들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수능 국어에 대해 철저하게 논리적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수능 국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규 국어 과목보다는 오히려 PSAT이나 LEET와 더 연관성이 높은 과목이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수리적, 논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이과 학생일수록 제가 제시하는 국어 공부 방법을 통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도 평균적으로 문과 학생들보다 이과 학생들이 제 수업이랑 더 잘 맞고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 글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댓글이나 쪽지를 통한 질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꼭 수능 국어 학습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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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합니다 이 댓글을 지금 봤네요.. 비대면수업이라고 하기엔 뭐한데 국어 관련해서 궁금하신거 있으면 답변해드릴 수 있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도움 필요하시면 쪽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