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말자 [401975] · MS 2012 · 쪽지

2013-05-17 22:34:49
조회수 15,472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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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절,
인천 교육청 주관 7월 모의고사를 치루고난 직후
시험을 망쳤다는 자괴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래서 평소에는 항상 하던 채점을 하지 않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친구들과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채 빵 하나를 사서 곧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에서 수능과 연계된다는 EBS수능특강 외국어영역 지문을 읽으며
저녁으로 사왔던 빵하나를 씹었다.
빵을 씹으며 영어지문을 읽던중
의식적으로 잊으려했던 7월모의고사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떠올랐다.

'아.. 나는 왜 안되는 걸까.. 놀면서 적당히 공부하는 애들도 잘하던데
 나는 집-학교-독서실만 왔다갔다 거려도 보상은 이런 자괴감 뿐인가..'

서러웠다.


하지만 모의고사 결과를 회피해서 바뀌는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서실을 나와 시험지와 답안지를 가져와
오답노트를 만들러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는 시간은 불과 5분

잠깐 독서실에 있었을 뿐인데
화창한 날씨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음침한 날씨로 변해 있었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비를 맞으며 학교로 향했다.

그 때 내 처지가 서러워 찔끔 눈물이났다.


교실에 들어가보니 미스테리하게 문이 열려있었고 불도 켜져있었다.

시험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았다.

결과를 회피하지말고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그렇게 시험지와 답안지를 가지고 나와 비를 맞으며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채점을 했다.

예상대로 못봤다.
 
....

또 울었다.. 


그래도 처음 시험지와 답안지를 가지러가며 내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위해
오답노트를 만드려는 시도를 해봤다.

그 심리상태에서 오답노트를 만드는게 가능할리가 없었다.

이럴땐 쉬는게 최고라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거짓말처럼 날씨는 다시 화창해져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을 자면 좀 나아질까, 오랜만에 게임을 하면 좀 나아질까.
무엇을해도 나아질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고1 여름방학부터 썻던 플래너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 보았다.
나는 약간 욕심(?)이 많은편이라
고1 여름방학때 종합반을 끊고 인강독학으로 돌린뒤

고1,고2 목표공부량은 12시간 고3 목표공부량은 14시간이었다.
(방학과 주말기준)

하지만 기억한다.

고1시절엔 아침9시에 독서실을가면 단어를 외운다는 계획은
지키지못할 약속이 되어버리고
2~3시간을 내리잤다.

비몽사몽 앉아있는 시간정도만 지키고
(정말 비효율적이다..)
7시쯤에 집에와서 밥먹고 쉬고 8시쯤 인강을 들으려 컴퓨터를 키면
나도모르는 사이 게임한판을 하거나 인터넷사이트 눈팅을하느라
인강계획도 점점 뒤로 밀려났다.

고2때는 좋은친구들을 만나 편하고 재밌게 공부했다.
조금더 마음을 편안히 가졌는데도 고1때보다는 
공부습관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고2 겨울방학이후엔 진짜 수험생이 되버린것 같은 두려움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나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어도 나의 기록은 왜곡되지 않는다.

나는 플래너에 공부시간을 적어놨다.
고2겨울방학 1월 2월동안에 순자습시간이 8시간이 안된날은
설날을 제외하고는 이틀 뿐이었다.
그리고 인강을 4강씩 꾸준히 들어서
(인강을 많이듣는 편이었다)

'평균' 순공부량 12시간을 지켰다.


나는 그렇게 공부했었는데..


고3 교실의 첫날에는 반 분위기가 너무 안좋아서
어떻게 여기서 1년을 지낼지
소위말하는 '멘붕'상태였고
담임선생님과의  트러블도 날 지치게했다.

그래도 고3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런데 나에게 남은 것은

기대이하의 3월,4월모의고사성적과
약간오른 6월평가원성적
그리고 박살나버린 7월모의고사 성적이였다.


공부시간 '기록'들을 적어둔 플래너를 지나
고1 조회시간에 쓰던 노트를 책장에서 꺼냈다.
 
집중하지 않고 스르륵 페이지를 넘기는데
문뜩 내가 적어놓은 한 구절이 나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인간은 노력하는한 방황한다' -괴테 [파우스트]



...!?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나의 이런 방황과 괴로움은
무언가를 추구하며 노력하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구절을 다시 읽으며
책상앞,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 흐느꼈다..
(여린소년.. ㅠㅠ)

아무 생각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수업시간에 자다가 수업이 끝나면 놀러다니는 아이들은 힘들어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나는 아무 생각없이 힘들어하지 않는 삶을 살거나
무언가를 추구하며 노력한다면 따를수 밖에없는 방황,괴로움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할거 같았다.

둘중 어느 삶을 살지 선택해야한다면.
나는 어느 삶을 선택할지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구절은
괴테의 파우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구절이라고 한다.

그 문장에 매료되 괴테의 파우스트를 두번정도 읽어보았지만
아직도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않는다.

여덞살때부터 시를 쓴 역사속의 위대한 천재가
이십대부터 집필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느껴 집필을 중단하고
칠십대가 되서야 겨우 완성한 작품을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도 모자른가 보다.

그렇다면 괴테가 전해준 금언의 의미를 
내가 온전히 받아들인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괴테의 금언이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변화된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생각없이 흘려보내던 고1을 지나
주체적으로 나를 이끄는 고3으로..

고3때는 읽고 눈물을 흘릴정도로 감동적이었던 문장은
고1조회시간에 선생님이 적으라고하니
옆 친구와 떠들다가 기계적으로 필기해두었을 것이다.

고1때 만난 그 문장은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고3때 만난 그 문장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을 쓰게 만들정도로 기억에 깊게 새겨져있다.

나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상투적인 문장의 의미는
나 자신이 변해야 세상을보는 관점이나 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뜻일 것이다.

모든 시간은 동등하지 않다.
힘들어서 길어진 고된 하루도 있고
즐거워서 짧아진 행복한 하루도 있다.

또한 의미없이 지나쳐서 기억속에 남지않는 하루도있고
나를 깨닫게 해주어 영원히 기억속에 남는 하루도 있다.

이 날이 그런 날 이었다.

의미없이 지나쳐 기억속에 남지 않던 문장은
2년 뒤엔 나를 깨닫게 해주어 영원히 기억속에 남는 문장이 되었다.

물론 그런 경험을 위해선 
변화된 자신이 전제조건일 것이다.


//

삼수를 거친 학생의 고3 이야기라 왠지 불신(?)이 들 수 도 있겠지만..
저는 생각보다 고3때 성적이 많이 올랐습니다.
7월모의고사 성적이 백분위로 언수외물화생화2가
(지금은 과탐이 2개라니! 나는 4개했는데!) 
68 93 89 83 92 96 76 인데(시립대도 힘들걸요..)
고3수능성적으로는 지금 다니는 대학 과만 낮추면 합격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ㅠㅠ 물론 오르비는 의대랑 서울대 원하는 수험생이 가장 많긴 하지만..)

사실 고3이 성적변동폭이 가장 크지만
재수건 삼수건 수능성적은 묘(?)하더라구요
저는 재종반다니면서 빌보드에 한번도 못들었는데
1~2등 하던애들도 저랑같이 연공(?)에 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평소 모의고사 성적은 좋지 못했어도
예과생이되거나 관악구에있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저는 모의고사는 앞으로의 공부방향을 설정하는 수단일 뿐이지
감정소모하게 만드려는시험은 아니었다는걸 깨닫는데
너무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대들은 저보다 일찍 깨닫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시길..


물론 수능이 운이 작용하는 시험이긴하지만
항상 꾸준한 아이들이 마지막엔 뒤집더라구요..

항상 꾸준한게 가장 어렵죠..

근데 가장 어려운 선택이 최선인 경우가 가장 많더라구요..   


여러분들이 지겹게 듣는
힘들어도 버티면서 꾸준히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제가 또 반복했네요..


단순히 높은곳에 올라가고자 모든 과정을 수단으로 여기는 그대보단

항상 무언가 깨닫는 삶을 사는 그대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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