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다 [792550] · MS 2017 · 쪽지

2021-01-14 12: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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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역 정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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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경험이 없었다. 운동은 뒤에서 손에 꼽혔고 게임은 롤 기준 실버~골드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었다.


당연히 공부도 열심히 안했다. 우리 학교는 전교 2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서 2~3명이 과고에 가는 무난한 지방의 중학교였는데, 거기서 중2까지 50등에서 70등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진짜 잘하는게 하나도 없는 엄청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의사가 되지 않으면 안될 말못할 이유가 하나 생겨 공부를 시작했고 나름 열심히 공부해 합산 성적 전교 석차 대략 40등 정도로 졸업을 하게 됐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의대에 간다는 생각 자체가 쪽팔려서 주변엔 말 못했다. 분명 고등학교 입학하면 잘하는 애들 엄청 많을텐데.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때 내가 했던 공부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열람실이 아침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했는데, 그냥 자이스토리 수학 몇 권 사서 도서관 문 열 때 들어가서 문 닫을 때 나왔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내 고3 생활과 반수 생활에 엄청 큰 영향을 줬다.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 전, 집에서 엄마가 지인의 아는 분이 우리 학교에 선생님으로 계신다고 그 사람과 통화하시는 걸 들었다.


“아드님 입학시험 성적을 보니, 다른건 별론데 수학은 2등급 정도 됩니다. 이 정도면 열심히 해서 부산대 정도는 갈 수 있을텐데 원하는 학교가 따로 있으신가요?”


“우리 애는 의대에 가고 싶답니다.”


그리고서 나는 아직까지도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어머님 꿈이 너무 과하십니다!!”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 꿈이라니, 내 꿈인데. 과하다니, 내가 할 수 있다는데. 내가 가고 싶다는데.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건데.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의대에 무조건 갈거라 다짐했다.


“의대는 누가 가는 줄 압니까? 중학교 내신 3%가 갑니다 3%!!! 아참 그리고 혹시 아드님 의대 보내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엄청난 비웃음과 함께 이 말을 했는데 또 화가 났다. 아니 내가 가는거지 엄마가 보내는건가?

아직도 어이가 없다.



일단 이 일이 있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3월 모의고사를 쳤는데 겨울방학 때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지 수학을 전교 1등 했다. 사실 4점짜리 두 개 찍어서 맞았는데 비밀이다. 다른 과목은 무난하게 2~3등급이 섞여 있었고, 주목받을 정도로는 잘 치지 못했다.



1학년 2학기가 끝나도록 내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남은건 2점대 후반의 내신과 평균 2등급 정도의 모의고사 성적표였다. 나는 의대에 가야 하는데, 수시로는 우리 고등학교에서 앞으로 전부 1점대 초반을 받지 못한다면 의대는 택도 없었다. 어차피 그건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정시밖에 남은게 없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시 올인할거면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이 때 살짝 자퇴를 결심했는데 물론 몇 시간 상담을 통해 학교 생활이 엄청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2학년 때는 선생님들께 엄청 자주 혼났다. 모의고사 성적이 안나오면 내신을 올려야지, 수업시간에 왜 수학 문제 푸냐고. 정시 얼마나 무서운줄 아냐고, 재수생들 오면 어차피 모의고사 등급 하나씩 다 떨어진다고. 어찌 이리 나보고 “넌 정말 할 수 있어!”라고 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던지.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이, 고2 6모에서 전 과목 거의 안틀리고 전교 1등을 해버렸다. 심지어 여긴 지방 일반고라서 모의고사를 잘 치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전교 10등 정도랑 40점 넘게 차이나는 점수를 받아버렸다. 9월부턴 다시 팍 떨어져서 원상복구 됐지만, 이 6월 모의고사에서 나는 힘을 얻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고3이 되었고 성적이 많이 올랐다. 이제 지방 의대 정도는 무난히 갈 듯한 성적이 나왔고, 선생님들도 몇몇 분 빼고는 내가 자습해도 알아서 하게 두셨다. 우리 학교 내신 1등이 설의 갔는데 모의고사는 거의 항상 내가 1등이었다. 그냥 이렇게 수능치면 되겠구나~ 하다가 6평을 쳤는데 수학이 82점 나왔다. 6평이라 수학 2였는데 수능이었으면 3이라 확신했다. 펑펑 울었다 진짜. 나는 의대 갈거라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6평이 아니라 수능에 대입하면 이 성적으론 치대도 힘들다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나는 여기서 더 열심히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 환경을 바꾸고자 야자를 빼서 독서실에 갔고, 나름대로 엄청 열심히 하다가 9평을 쳤는데 대박이 났다. 전 과목 4개 틀리고 인설의 성적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는데, 사실 전 과목에서 두 문제를 찍었는데 둘 다 맞았다. 주변엔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거 수능이었으면 찍맞 없는 상태로 인설의는커녕 지방의도 힘들다는걸.



6평과 마찬가지로 변화가 필요했다.



어떻게 여기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나는 다시 돌아가도 못할 것 같은 선택을 한다.


수시 원서 접수가 끝나고, 나는 가톨릭대 의대 논술 접수증을 학교에 들고 가서 책상 구석에 붙였다. 그리곤 포스트잇으로 옆에 적었다.


‘말 걸지 마세요.’


학교 안에서 한 마디도 안했고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체육 시간에도 강당 들어가서 공부했다. 선생님들도 대충 소문이라도 났는지 아무도 말을 안거셨고, 내가 포스트잇 가리키면서 한 마디도 안하니까 찾아오는 애들도 점점 줄었다.


그리고 이건 꿀팁인데, 교실에 끝까지 남아있다가 고3 친구들 밥 먹고 돌아올때쯤 급식실 가면 고1~고2 줄 서있어서 그 때 혼자 영단어 보면서 새치기하면 줄 서는 시간 아끼고 책상에서 공부 좀 더 할 수 있다.


급식실 혼밥 진짜 서러웠다. 진짜 진짜 서러웠다. 그리고 나는 보여주기식 공부가 아닌데도 급식실에서 영단어 수첩보고 용기백배 한국사 보면 시선 엄청 끌렸다.

(그래도 덕분에 반수하면서 혼밥한건 타격이 1도 없었다. 밥먹다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 급식실 혼밥 생각하면 이까짓 것쯤 다 이겨내기 가능했다 ㅋㅋㅋㅋ!!)


그러다가 수능을 쳤고 지방 사립 의대 성적이 나왔다.




주변에서 많은 말을 들었는데, 제일 인상 깊었던 말은 고1부터 친했던 친구가 해준 말이다.


“솔직히 9평 치고 나서까지도 네가 진짜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근데 지금 보니까 내 생각에 너는 뭘 해도 될 거 같다.”




참 고마운 말이다.

rare-기출파급 물리학1하 rare-나는야 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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