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그리고 100일간 준비한 수능에 대한 나의 생각 (진로)
게시글 주소: https://iu.orbi.kr/00033967744
2017 수능을 봤던 열 아홉살 학생.
서울대 건축학과를 가고싶어 지구과학 2를 선택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17 지2 백분위 100 아 ㅋㅋ)
수학 가형을 5등급 받았지만 가지고 있던 미술활동을 최대한 활용해서 홍대 미대에 갔습니다.
미술은 적성에도 잘 맞았고, 학교에서도 꽤 상위권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 작가나 사업쪽으로 유망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가구 사업을 해서 이태원, 홍대, 수원에 카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왜 내가 의대를 가고 싶었을까,
군대에서였나, 유튜브를 보다가 외과 수술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뛰더군요.
내가 톱질하고, 끌질하고, 나무를 깎아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참 잘하는데, 그 정교한 손으로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스물 한 살이었고 (2018년) 늦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네요.
병장쯤 돼서 할 게 너무 없으니 2019수능을 도서관에서 한 번 풀었던 기억도 납니다.
국어 영어가 2등급은 나오길래 감은 살아있다 싶긴 했는데, 그땐 스물 두 살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전역 후에 항상 마음 한켠에 의사에 대한 꿈이 있었지만, 미루고 계속 미뤘네요. 고3때 너무 힘들었던 생각을 하니 공부를 다시 하기가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전공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하루에 운전을 거의 120km씩 했어요. 분당에서 홍대로, 홍대에서 을지로로, 또 수원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미팅을 보고, 설계를 하고, 외주를 맡기고... 나름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스물 세 살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장에 돈이 많이 들락날락하는걸 봐도 행복하지가 않던, 적성과 진로가 다를 수 있다고 느꼈던 8월의 어느 날 저는 입시를 하기로 맘먹습니다.
다들 만류하더라구요. 아무리 네가 공부를 했었다 해도 너무 늦었다고, 수능 4년동안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3년동안 미루고 미뤄왔고,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처음 공부를 시작하던 날, 6월 모의고사를 봤을 때, 국어는 79점, 수학은 41점, 영어는 70점(...) 탐구는 10점, 30점 나왔어요.
당시에는 있었던 여자친구나 부모님 모두 점수를 듣고 한숨을 푹 쉬었었죠. ㅋㅋㅋ
그때부터 매일 공부를 죽을듯이 했습니다. 국어는 국어의 기술과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영어는 EBS만 엄청 파고, 수학은 정석부터 시작해서 기출문제를 정말정말 많이 풀었어요. 탐구는 인강 커리와 교과서 개념을 읽고 또 읽고,,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수능이라는 시험은 암기시험이 아니기에 사고력을 최대한 효율화하고 필요한 지엽을 막판에 숙지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문법은 솔직히 버리고 간 것 같아요. 후회되긴 하네요. ㅎㅎ
수능이 50일 남았나? 갑자기 차였어요. 그냥 차인 것도 아니고, 엄청 상처를 주는 말들을 들으면서 차였어요. 차라리 입시하는 걸 못기다리겠다, 아니면 내가 싫다 마음이 사라졌다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일방적으로 통보와 잠수를 해버리니 공황이 오더군요. 많이 좋아했던 친구라 거의 20일은 아무것도 못 하고 독서실 벽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이상한 소문을 들었나 별 생각들이 다 들고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고, 입시를 왜 시작했나 자괴감도 엄청 들었네요.
수능 30일 전 쯤에 정신을 차렸어요. 신앙이 있는데, 기도하면서 어느 날 회복이 되었어요. 기운 차리고 다시 독서실로 돌아갔죠.
수능은 국어 91점 (문법 3개 틀렸습니다 ㅋㅋㅋㅋ) 수학 78 영어 90 탐구 48 47 이렇게 나왔네요.
수학이 많이 아쉽죠? 첨에는 좀 속상했어요. 근데 생각해볼수록 감사한 점수라는 결론이 나오네요. ㅎㅎㅎ 탐구는 수능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40점이 안나왔었고, 국어 영어도 완성된 실력이 아니었거든요. ㅋㅋㅋ 다만 입시를 시작할 때 모토로 잡은, 최대의 사고 효율화 전략은 통했다고 생각해요. 수학은 10점이 실수로 날아갔지만, 이정도면 제 실력 치고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논술도 없고, 정시만 3장 남은 상황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붙을만한 곳을 써봐야 하나 싶기도 했고, 머리가 참 복잡했는데 지금 내린 결론은, 의대 2개 한의대 1개 쓰자는 겁니다. 표점합이 393정도 나올 것 같은데, 입시 분석을 해보니 완전 불가능은 아니다 싶어요. 홍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다들 불가능이라고 했는걸요. ㅎㅎ 그래서 3개 다 상향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만약 붙는다면 24살 새내기가 되겠죠. 나름 레전설 입시가 되겠죠?
떨어지면 복학을 할 생각입니다. 부모님 눈치가 좀 보여서, 무휴학으로 22수능을 칠 생각이에요.
내년에 붙는다면 25살 새내기가 되겠죠. 나름 괜찮아요. 스물 다섯 젊어요. ㅋㅋㅋ
떨어지면 졸업을 할 생각입니다. 학위 두개 따고 좋죠~ㅋㅋㅋ
졸업까지 하고도 입시가 안되면 학사편입을 하든 23, 24 수능을 치든 어떻게든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이젠 있습니다.
이번에 입시를 하며 느낀 건, 늦은 나이란 건 없다는 것이었어요. 생각보다 주변엔 다양한 나이에 새로운 걸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인생은 속력이 아닌 속도라는 걸(벡터,,)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에게 차이는 경험을 하며 멘탈도 훨씬 단단해졌구요.
앞으로 제가 글을 자주 쓰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일이 생긴다면 2016년부터 제가 참 좋아했던 이 오르비에 꼭 글을 쓸거에요.
만약 몇 년이고 소식이 없다면, 열심히 무언가 준비중인거겠죠 ㅎㅎ
오르비에게 고맙습니다.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최대의 효율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
추운 날씨 모두들 조심하시고, 늦었지만 2021수능 준비하신 모든 수험생 여러분들 (특히 98 칭구들) 모두 수고했어요 ^^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얘네들은 평타만 돼도 기만 잘생겨도 기만 못생겨도 기만이라이니까 뭐가 진심인 질...
-
생방임
-
ㅈㄱㄴ
-
순서대로 작년 수능 6모 9모 수능 가채점인데 반수해야될지 말아야될지 고민입니다
-
오늘 릴스 내리다 우연히 봤는데 어떤 일인가 하면 625전쟁때 남한이 북한한테...
-
서강대 재학중인데 학교 옮기기 가능할가여..0
-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진정으로 여성 인권 신장을 원한다면 1
그딴식으로 시위했으면 안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셀프 사회적 낙인+여대 졸업생을 차별할...
-
맞팔맞팔 4
ㅁあㅈ팔
-
수학 기출서 0
기출로 자이스토리 어떤가요? 자이스토리 원솔멀텍 중 고민 중 입니다. 공부 목적은...
-
기초생활수급자 전형 가능합니다 가군-고려대 기균 나군-서강대 기균 다군-홍익대 or...
-
마실 사람이 없는데 술 없이 못버티겠음 오늘은..
-
무신사 오프라인 0
팝업은 24일에 끝난 걸로 알긴 하는데 오프라인 매장 가도 온라인에서 파는 할인율과...
-
친구랑 겜하기로 했는데 흠..
-
3모때 동홍낮과도 애매한 성적이었는데 수능 잭팟터져서 성한인문성적 나옴...
-
그룹 뉴진스 다섯 멤버가 오늘(28일) 저녁 8시 30분 긴급 기자회견을 엽니다....
-
연세대 "2027년 신입생 당겨쓴다"...초과선발에 억울한 고1 4
[파이낸셜뉴스] '재시험' 홍역을 치른 연세대학교의 자연계열 수시 논술이 결국 추가...
-
수능 끝난 수시러 고3입니당 거의 6개월동안 짝사랑 하던 애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
수시 전화합격 6
만약에 수시 전화합격이 왔는데 전화 받고 안 간다고 하면 정시 쓸수 있는거임?
-
어떤가요? 철학하고 역사 좋아하는데... 서울대 인문 목표인데 별로일까요..?...
-
ㅈㄱㄴ
-
고2 11모에 26414받고 현역수능인 25수능에 13411 나올 것 같습니다...
-
눈 온 거리 너무 좋음뇨
-
https://orbi.kr/00070194388/%EC%98%A4%EB%8A%98%...
-
누가 나은가요? 들어보신 분 계실까요? 언매하다가 20분 2틀인거 보고 화작할...
-
진ㅋ자ㅇㅈ 3
-
아 스위치살까 3
마렵네
-
N수하면 그만큼 리스크도 있고 돈벌면서 공부하는게 쉬운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
뭐임
-
교직이수 가능한 과 가게되면 교직이수 해보고 싶은데
-
인강 다들 2026커리소개하는데 이다지쌤만 안올라와서ㅜㅜ
-
현우진 풀커리만 다 해도 금방 수능 되는거 아님?
-
옛날노래나 일본노래만 들음
-
하냥대로 날아간다앙
-
오늘 루트 14
집 행신역 부산역 근처 국밥집 남포동 관광 안내소 용두산...
-
ㅇㅈ 2
ㅈ
-
라고 믿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해요 올해 44점 받은 제자들이 왜이리도 많은지..
-
제발 이대로만 5
-
무지성정시러 양으로꼴아박고 암기와는거리가멀며 아주 잘하는 과목이 없고 정신을 늦게 차림
-
나도 수시로 대학 가보고 싶다
-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최종 승인…세계 10위권 항공사 탄생 3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인 EU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
내신 4 극초 권장 이수과목 전부 다 수료했으면 bb 주나요
-
아무도 못 맞힌다는 게 내 피셜임뇨
-
일단 8학군 갓반이고 첫내신때 군기? 바짝들려서 국어 전교권찍고 2점초 한번 만든거...
-
좋아하는 애랑 좀 닮음
-
해군 육군 군수 6
27수능볼 계획입니다 공군은 커트라인이 너무높기도하고 3월에 입대하고싶어서...
-
진짜 야식 술 먹으면 싸대기 ㄱㄱ;;
-
왕
-
최상위권들은 손해보는 시험이었지만 저같은 중상위권한테는 20수능급 황밸수능이었던 듯...
-
당일치기는 하지마라..
감사합니다 :)
인생은 속력이 아닌 속도 지금 엄청 공감하는 말이에요ㅎㅎ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ㄹㅇㅋㅋ
ㅎㅎ 글 흐름이랑 맞지 않고 모순적이죠. 외과의사가 꿈이라고 하면서 한의대 쓰는게. 저도 사실 부모님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한 결정도 있고 해서 그래요. ㅋㅋㅋ ㅜ
저희 학교 담임쌤이 말씀하시길, 쌤이 대학 들어가셨을 때 같이 들어온 새내기분이 다른 학교 다른 과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육아까지 하시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 다시 입학을 하신 경우도 있다고 하셨어요
꿈을 이루는 데 늦은 건 없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꿈 꼭 이루시길!!!!
좋은선생님이시네요
ㅎㅎ 감사해요 ^^
늦은 시간이란 건 없다는 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올해 수능보고 좌절한 열아홉 입니다
본받을점이 많은것같아요
존경합니다
응원합니다!
저도 올해 군대갔다와서 6개월공부한 98년생인데 교대쓰고 반수하려는데 상황이 얼추 비슷하네요
같이 화이팅하고 좋은일만 생기세요
화팅입니다!ㅎㅎ 98 아직 창창합니다!! :)
응원합니다
정말 나이는 크게 상관 없는 것 같아요~ 같이 파이팅 합시다 ㅎㅎ
이런사람이 의ㅣ대가야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동갑내긴데 저보다 많이 경험하셨고 같은 도전을 해서 참 대견하면서 부럽습니다. 원서영역에서도 성공해요 우리
전공에 몰두하신 경험이 부럽네요 형님
수학에서 2개이상 틀리면 의대 못간다던데
ㅋㅋ 못 갑니당
저도 꿈이 바껴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해 쌩사수하는 중입니다만 정말 존경합니다 올해는 꼭 원하는 대학 가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