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군 [400088] · MS 2012 · 쪽지

2012-10-30 20:49:05
조회수 2,140

23년동안의 인생, 불확정한 미래, 나약한 내자신.

게시글 주소: https://iu.orbi.kr/0003151597



BGM정보: http://heartbrea.kr/index.php?document_srl=3704510

안녕하세요

제목그대로 여태까지 살아왔던 인생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게 좋은것인지 그냥 저보다 나이많은 분들 혹은 저랑 동년배
뭐 괜찮으니 어린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글쓰니.. 그냥 읽어주세요

저는 올해로 23살(90년생) 남자 입니다. 가족관계는 부모님 모두 살아계시고 동생이 한명있습니다.

여태까지 살아온걸 길게 나열하고 싶지만 기억력이 종범이라 간략간략하게 써보렵니다.

유년기 (0세~ 11살)
유년기를 0세에서 11살로 잡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11살에 감당하기 힘든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의 고향은 충청북도 단양입니다. 아시는 분이 많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뭐 무튼 거기서 아버지는 공무원을 하셨고 어머니는 전업주부 하시다 보험설계사를 하셨죠
집도 있었고 할머니도 같이 살았죠 기억하기론 이때가 가장 행복한걸로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건 아버지의 주사가 너무 심하셨던것이죠
몇가지 덧붙이자면 아부지는 현재 어머니와의 결혼이 두번째 입니다.
지금까지 잘지내고 계시지만 문득 첫번째 결혼하셨던 분의 얘기를 종종꺼내시는데
어머님의 엄청난 분노로 인해 요즘엔 아예 안꺼내시고 지내십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첫번째 결혼하셨던 분과는 혼인신고까진 안했던거 같고
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주사로 집을 나가셨다고 합니다.

주사에 관련하여 몇가지 이야기를 덧붙이면(아버지를 욕먹이는거같아 쓰지 않으려고했지만.. 뭐 그냥 씁니다.)
일단 주사라는것이 어머니와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삼촌방(그당시 공무원시험준비중 대략)에서 할머니와 함께 문을 걸어잠그고 잤던 기억이납니다.
어린마음에 친구한테 아부지랑 어머니랑 싸웠단 얘기도 했던 기억이나구요.

어찌됬건 아버지의 주사가 너무 심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어머니는 외도를 하시게됩니다.(위에도 얘기했다시피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재 잘 지내고 계십니다.)
거기에 아버지가 서주신 보증이 잘못되어 연대책임으로 빚을 약 2억정도 지시게됩니다.
돈이 많지 않던 저희 집안으로써는 참 안타까운 상황인거죠
이 상황속에서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 두시고 부산으로 모든 가족을 이끌고 내려가시게 됩니다.
(아부지의 출생지는 부산이지만 할아버지 고향과 할머니 고향이 단양이기에 단양에서 크셨고 여기서 초중고를 나오셨습니다.)

여기서 생활할 당시 저는 글 쓰기를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 독서와 글쓰기는 좋아합니다.
종종 군대표로 도단위 백일장에 나갔으나 상을 받은 적은 없었네요.

여기서 저는 어머니의 외도사실을 알았고 아버지의 과거사실(결혼)에 대해서도 알게됩니다. 꽤 혼란스러웠지요.

11세 부산생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의 생활은 약 2달정도였지요
내려오자마자 시작한 것은 해운대 모텔에서의 모텔방 생활입니다. 어린나이에 철 없이 바닷가에서 놀았던 기억
그리고 아버지의 분노의 부부관계(이것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고 만약 여친이 바람을 핀다면 .. 글세요 전 그건 모르겠어요 아무튼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를 목격하게 됩니다. 자는 척을 했지만 그당시 상황 대사 모든것들이 생각납니다.
소위 말하는 야밤도주를 한것이였습니다. 여기서는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쪽방살이를 했지요
부산진구 범천2동 학교는 범일초등학교를 다녔네요.
그리고 아버지는 서울에 계신 외삼촌과 일을 해보려고 서울에 계신 상황이였고 저희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물론 여기 내려와서 한달간은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단양에서의 일도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였고, 전학수속도 밟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한달여의 백수생활을 하고 학교에 들어가고 거기서도 학교 대표로 글쓰기 대회에 나갑니다. 하지만 물론 상은 받지 못하였네요.

11살 ~13살 초등학교
서울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집은 외삼촌 가게 근처 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외도때문에 아버지는 외가쪽을 극히 싫어하시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숙이고 들어가신 듯 했습니다.
여기서 외삼촌의 사업은 자동차 부품판매입니다. 간단히 설명을하면
고장난 차가 카센터에 들어옵니다. -> 카센터는 모든 부품을 구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외삼촌 가게에 전화를 해 배달을 시킵니다.
이런것이지요.
뭐 무튼 공무원하시다가 오신 거라 나름 힘드신것도 있고 열심히 하시는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가게 사람들 밥을 해주십니다. 집에서 밥을 해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가게와 가까워 가게에서 일하는 삼촌들이랑 친하게지냈고
동네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납니다.
물론 책읽기를 좋아해서(주로 소설) 꼬마루소라는 어린이 책방의 책을열심히 빌려다 읽었던 기억이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아 학원보내달란 말은 않고 그냥 저냥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리고 문득 기억나는 한가지는 음.. 전 원래 욕을 안썼습니다. 시골에서 살때도 그렇고
시골살때 어디서 형이 '존1나'라는 말을 배워서 밥상에서 그얘길 했더니 엄청나게 혼났던 기억도 있구요
하지만, 서울올라와서 만났던 친구한테 배운말은 '욕을 안하면 어울리기 힘들어' 였습니다.
이게 충격적이였단 생각이 드네요
여기서 워드 프로세서 자격증을 따게됩니다.

14~16살 중학교
초등학교 위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받고 졸업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때는 음악방송에 심취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버디버디도 열심히했구요
순육의 추억..인가..ㅋ
물론 공부는 못했습니다. 종종 성적표 조작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아버지는 그 성적을 아직도 믿고 계십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게임은 열심히 안했던 기억입니다.
끈기가 종범이라 그당시 유행하던 어둠의 전설/ 혹은 바람의 나라와 같은 게임은 잘 못한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이때 친구들과 다니던 노래방에서 처음 담배를 접하게 됩니다.(15살)
그리고 수련회 같은 데 가서 일진들에게 돈을 뜯긴적이 있고
2학년때 친구랑 대판 싸운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일찐 중 따가리 한명을 엄청 때렸던 기억 싸움은 이 두번밖에 하진 않고
그닥 맞지도 않고 그냥 찌질하게 보낸 거 같습니다.


17~19살 고등학교
저는 실업계를 가고자 햇습니다. 중학교 전체 성적이 백분위 50%여서 인문계가서 시다를 하느니 그냥 실업계가서 컴퓨터배워서
운좋으면 실특으로 대학가고 아니면 취업하자는 생각이였지요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처음엔 부모님 그리고 작은아버님 그리고 할머니까지 반대를 하는 상황이 오자
저는 그냥 인문계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처음 간 인문계 저희 옆동네가 공부를 잘해서 집값이 오른 동네라 공부잘하는 애들이 오는것도 있고 무서웠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제가 큰 잘못을 하게 됩니다.
위에 써놨던 중학교때 대판 싸우고 친해진 친구한테 뒤통수를 치는거지요
지금 생각하면 범죄고 그 친구에게 무릎꿇고 용서를 구해서 잘 무마되고 다시 베프가 되긴했지만 뭐 어쨋거나
사건을요약하면 그당시 저는 동네 친구들하고 놀면서 지냈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실업계를 다니고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인데 이때 담배를 본격적으로 피게 된거같군요
뭐 암튼 이 친구들이 스쿠터를 한대 샀는데 그걸 제 친구에게 팔고 복제한 키를 이용해 다시 가져와서 딴데다 되판 거였죠
그 친구는 편모가정인데 저는 지금도 생각하면 항상 고개를 푹숙이고 미안하단 말 밖에 못하죠.
가격이 그당시 80만원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 시 학교 얘기로 돌아가면
사실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남들은 흔히들 얘기하면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간다는데 저는 고등학교 친구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는
단 두명입니다. 뭐 제가 사회성이 없는 걸 수 도 있지만, 뭐 어찌됬든 결과가 그러니.. 뭐 할말은 없네요
어찌됬든 성적은 엄청 안좋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평생의 기억남을 선생님을 만나게됩니다.
익명게시판이니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만 몇가지 이야기를 풀면
1학년 담임샘이셨는데 이 선생님이 학기초 출석률이 부진한 한 학생을 교화(?) 뭐암튼 학교를 다시 오게 하려고
산행을 하셨는데 거기에 따라다니면서 선생님과 친해지고 선생님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 되었던 저는 공부를 참못한 학생이였고
2학기 부반장선거땐 아무도 입후보를 안해서 저는 손들고 부반장이 됬습니다.
난생 처음 부반장을 해봤네요.

뭐 그리고 2학년이 되서도 변한건없습니다.
동아리라고 스카우트 들긴 들었는데 돈이 없어 외국이나 이런덴 못가보고 그냥 국내에서 하는 행사는 갔었습니다.
여기서 친해진 선배는 종종연락하다 1년전에 제가 그냥 연락을 안하게 됬습니다.

2학년 말 2학년 말에 저는 흠.. 뭐랄까 1년뒤에 지금과 같은 상태면 쓰레기가 될 거같은 두려움에 휩쌓여 공부란걸 하게됩니다.
하지만 공부가 어디 쉽던가요..ㅋ
그냥 무작정 영어단어 외우기부터 시작해서
기적이란걸 바라고 공부를 하게되고
아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1학년 담임샘의 제안으로 학교에서 하는 노인분들을 위한 동영상 제작 강좌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동영상 제작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상을 타게됩니다.
그당시 탓던 상은 서울시 교육감상
그리고 그다음은 노동부 장관상
그리고 졸업하고 탄건 경상남도지사상
그리고 이건 뒤에 쓸 이야기지만 이명박 반대 UCC를 통해 판도라티비 조회수 20만건을 돌파하게되고
작년에 ㅇㅇ광역시 뭐 동영상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덧붙여 이걸통해 군대에서 보직에없는 대대 정훈병 보직을 맡게됩니다.

3학년에 접어들게됩니다.
3학년에 들어선 뒤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근데 잘 안늘더군요
지금 가지고 있는 9월모의평가 점수는 3 5 5/5555 였으니
저는 목표는 인서울만 하기였습니다. 그당시 인서울 하위권이 한서삼이였으니
여기만 가도소원이 없겠단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2008년 2월에 인생에서 큰 사건중인 하나인 MB반대 촛불시위에 합류하게 됩니다.
정치라는 과목에 흥미가 있었는데 그당시 블로그도 운영하고 위의 써논 동영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자
자연스럽게 깊게 들어갔죠
흔히들 촛불집회가 크게난걸 08년 5월로 기억하시는데 실제론 1월(특검)부터 특검사무소 앞에서 이뤄지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거기 운영진들하고 친해지게 되죠
그리고 열심히 다니다 6월쯤 하다 그만 둡니다. 공부를 해야 되는 생각이였죠


그리고 두둥 수능

수능은 성적이 대박이 났습니다. 포기했던 수학은 제쳐두고
한서삼을 제치고 인서울을 하고 법학과에 입학하게됩니다.
3학년은 별 생강이 없네요..

뭐 그렇게 보냅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평해보자면 역시나 찌질찌질하게 생활한 거 같네요

대학교 1학년 1학기
대학교에 가기전 저는 시간을 그냥 날렸습니다. 새가슴이라 ㄷㄷㄴ떨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잉여짓을 해댔지요 그러다 대학에 붙고난 후 OT에가서 아저씨 별명이 생긴것도 기억이나네요
뭐 어쨌든 학교 생활을 시작합니다.
학생회와 동아리를 둘다 가입했는데 두개는 무리란걸 느꼇고 학생회를 접게 됩니다.
사실 여기 비하인드 스토리는
학기초에 맘에드는 여자애 4명이 있었는데 다 대쉬했다 까였죠..ㅋㅋ 그들은 모두 학생회..ㅋㅋ
뭐 암튼 꿈같은 로망을 안고 동아리에 들어갔고
역시나 여기 동아리 선배 누나가 맘에 들게 됩니다.
아쉽게도 남친 이있었지요
이누나와의 썰도 있는데 그누나를 배려해서 더는 못쓰겠습니다. 뭐그냥 매우 가까워 졌다 난 군대감 이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거같습니다.
그리고 학점은 망합니다. 1.13이였나 시력보다 낮은 학점과 더불어온 학사경고..ㅋㅋ
잇달은 여자관계에 대한 실패등으로 인해
군입대를 결정합니다.
1학기 종료 6월20일 입대일은 6월23일 입대하게됩니다.

군대~제대
군대는 306보충대로 입소를 하게됩니다. 여기서 저는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꿈의 17사단
번개부대로 갑니다. 그리고 인천의 한 부대로 배정을 받게되죠
훈련소에서 또한명으 ㅣ인연을 만납니다. 훈련소에서 만난 동기와 함께 군생활을 끝까지 같이한
306을 제외한 모든 기간에서 중대 소대 까지 같은 동기를 만나게됩니다.
거진 동반입대와 다름없을정도로 친하게됩니다.
어찌됬든 연대에서 받은 주특기번호는 1112(K-3기관총사수) 였고 저와 위의 동기(줄여서 K)는 연대 관할인
강안부대에 들어가기위해 말도 서로 맞추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fail... 어찌됬든 내륙부대로 들어가게됩니다.

내륙부대에 왔습니다. 저는 주특기가 1112라 소총중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대대장 면담이후
1122(맞나? 90MM 무반동총)주특기를 받고 화기중대 직사화기 소대로 배치됩니다.
하지만 체력이 약한 저는 잦은 낙오로 인해 중대장 눈에 들었고
그리고 위에 쓴 동영상 수상이력으로 인해 대대 작전과 정훈병(원래 대대는 정훈병 편제가 없으나 제 사수가 있는 바람에 부사수로 뽑힘 하지만 사수는 1주일뒤 전역)으로 차출되고
별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채 온지 3개월된 신임 정훈장교와 함꼐 업무를 꾸려나갑니다.

그당시 작전과에서 많은 야근과 새로온 정훈장교가 워커홀릭이라 해도되지 않은 일을 자꾸해서 같이 고생했던 기억이납니다.
뭐 그당시 배운 엑셀 파워포인트 동영상제작(최초에 배운건 Ulead video 그리고 군대서 공부한건 vegas)을 공부하게됩니다.
그리고 문득 재수에 대한 생각이 들게됩니다.
일찍온 군대 뭔가 메리트를 얻으려면 재수를 해야될거같단 생각이 들게되지요.
그래서 정훈병의 직위이용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게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꽤 많은 소설 약 100권 정도를 군대에서 읽게 됩니다.

수학의 정석을 풀었으나 잘안풀리고 EBS 수능특강을 풀었던 기억이납니다.
지금생각하면 가장 헛짓한거같단 생각이듭니다. 운동이나할껄 그랬네요.

그리고 10년 겨울에 아버지께서 위암에 걸리셨단 소식을 듣게됩니다.
급하게 청원휴가를 통해 아버지 병원에서 몇일 지내다가 들어가게됩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나 아버지는 완치하시고 술을 끊으시게됩니다.
하지만 후에 다시 마시고 계시지요. 주사는 안고쳐지는거 같습니다.

뭐 어찌됬든 제가 09-6월군번이고 4월전역
11년 4월 말년휴가를 출발하고 노량진에 재수단과반에 등록을 하게됩니다.

제대~재수
여기서 몇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죠
의대준비생 서울대 준비생 이과생 뭐.. 등등
그들과 함께한 재수생활은 잊지못할거같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한공부인지 성적은 오르지 않더군요
하.. 한숨만 내쉬게 되죠
그리고 수능날
450만점에 410점을 맞는 대박을 터트립니다.


재수후 11월~12월
하지만 원서영역을 잘못 썼던 것인지 모두다 떨어졌습니다.

교대 예비가 떠서 기대했으나 아쉽게 fail 삼수를 결심하게 되고
간단한 알바를 해봅니다.
12월한달간한건데
콜센터에서 전화받는 알바였고 한달 알바비 88만원 받아서 인강 프리패스를 사게됩니다.

삼수 1월~현재
점수가 크게올라 자신감을 가진 저는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일년 더하면 안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당시 고깃집이였는데

저 : 아버지 저 한 번 더하려고합니다.
아버지 : 그래 너가 하고싶다면해야지 열심히 해라

이 단 두마디의 대화로 저는 삼수허락을 받게되고
1월 집근처 도서관에서 삼수를 시작하게됩니다.
삼수 시작 부터 7월까진 공부가 잘됩니다.
중간의 사건이 하나있었는데
동생하고 싸운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서울에서 올라온 이후 부모님이 바쁘셔서 동생과 제가 둘이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부러운 게 많았습니다. 뭐 쪼잔한거긴 하지만.. 저느 ㄴ살면서 로보트라는걸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딱히 생일상을 크게 받은것도 아니고 선물은 받은 기억이없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그런지 동생에겐 갖가지 장난감과 선물들이 들어오더군요
부러워서 동생을 마구 괴롭혔습니다.
나이차도 꽤 있고 하니까요... 뭐 잘했다는건 아니고 아무튼 많이 괴롭혔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둘이 멀어지고 2월에 동생이 어머니한테 말을 좀 심하게 한거가지고
제가 뭐라하면서 한대 치니 달려들어서 저를 때리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싸워서 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2월 중순부턴 패닉상태에 빠진 기억이 나는군요.

그리고 5월 노량진으로 복귀합니다. 원래 안오려고했는데
노량진에 독서실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게됩니다.
여기서 아는 형을 만나게되고 다시 독서실을 옮겨 그형 옆자리로 갑니다.
씹돼지인 저는 그형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과 함께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쓴소리를 듣게됩니다. 뭐 사실이긴 하지만 듣기 힘든건 사실이더군요.
(추가로 그형은 현재 7급공무원에 합격했습니다.)

어찌됫건 6평을 보고 망하고
다시 공부하다 9평을 봤습니다.
성적은 엄청올랐습니다. 등급은 112 13 이였습니다.
비약적인 상승이지요.
그리고 손을 놨습니다.
노량진에서 듣기힘든 소리가 너무 듣기힘들어 집으로 왔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공부가 하기 싫어진 것이죠
계속 놀고있습니다.
..

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수능이 무섭고
죽고싶단 생각이 듭니다.
절 믿어주는 몇없는 친구들 부모님 가족들을 배신하는거같아
하루하루 죄책감에 미치겠습니다.
수시는 현재 고려대와 성균관대 서강대를 썼습니다.

최근의 모의과를 보니 322 33 이렇게 뜨ㄱ더군요..
원래 다닌 학교도 못갈점수가 뜨네요..
물론 밤새곤 모의고사라 그럴 수 있다라고 자1위하고 있지만
미치겠습니다.
이젠 사람만나는게 두렵고
뭘해야될지
제가 뭘해야 행복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
저는 고등학교때 정치에 대한 꿈을 품은적이있고 그로인해 법학과에들어온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음. .뭐랄까요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서울대를 보고한 3수이기에
SKY를 가서 행정고시를 볼 생각인데
점점 공부와는 전 안어울리고 공부를 못하는 놈인거같아.. 뭘해먹고 살아야할지
주변에 딱히 상담할 사람도 없고.. 모르겠네요..하..

사실 나약해 보이는거 같아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찌됬건 나약한 모습도 제 자신이요 담대하게 맞서야 하는 것도 제 자신의 몫이라고 판단해서
좀.. 그냥 뭐랄까 아무생각없이 적어봤네요
분명 아니꼽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테고 없어보이는 부분
찌질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겠지만.. 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이건 어제 그냥 문득 든 생각이네요 ..ㅋ
아침, 독서실을 가다 종종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곤 한다.
내가 지금 수능을 공부하는 것이 왜이렇게 부끄러운지
뭘하냐고 물으면 그냥 학교공부를 한다고 둘러댄다.
나도 이제 곧 떳떳하게 어딘가 다른학교를 가고
설령 그게 내가 원하는 학교는 아닐지언정 거기서 친구를 만나고
지금과는 다른 생활을 겪을 것이지만,
그것이 지금은 하나의 희망이자 또다른 두려움이 되는 것 같다.
20대 초반의 대부분이 군대와 수험생활로 채워져서 그런지
이제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공유하고
행동하는 것이 낯설다.
지금 독서실에서 보는 10년지기 오랜친구조차
지난 2년간 교류없이 지내다 만난 터라 그와 무언가를 하는것 조차 낯설다
현재의 내 모습은 내 선택의 결과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한없이 나약해지고 약해지는 내 자신을 보며
경멸감 마저 느낀다.
머리가 막막해지고 붕뜨는 느낌이다.
쓸데없이 걱정하면 안되는 시기지만 막막함이 머리를 채운다.

미치겠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Legatus · 413728 · 12/10/30 21:33 · MS 2012

    모의고사를 쳤는데 망쳤거나 파이널하는데 자꾸 뭘틀리거나 하면 참... 머리속에 내 단점들을 다 모아놓은 시간을 맞이하게 되죠...
    이런생각은 비단 글쓴이뿐만 아니라 내성적인 누구라도 드는거같아요..
    하지만.. 무슨일이던지 막상 대면했을때는 걱정보다 훨씬 평소대로 흘러가더군요... 수능도, 아마 약점만 떠오르는 이 순간보단 안정적인 상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 Legatus · 413728 · 12/10/30 21:46 · MS 2012

    참고로 지금은 마치 자신이 약점으로 점철된 쓰레기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자아상의 원인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님이 부딫힌 무언가의 난관때문입니다... 님 스스로는 그 난관이 보여준것처럼 나약하지 않다는걸 아셔야합니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신들린것처럼 풀리는 순간의 님처럼 강인하고 백전무패의 존재도 아닐겁니다.. 그 두 순간의 중심 어딘가서에 스스로는 계속 발전해나가는거죠
    다만 인식하지 못할뿐입니다..

  • 니군 · 400088 · 12/10/30 21:53 · MS 2012

    감사합니다^^

  • 자담0815 · 367291 · 12/10/30 21:35 · MS 2011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