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an.T(션티) [253967] · MS 2008 (수정됨) · 쪽지

2019-08-19 21:24:34
조회수 15,654

아무도 너에게 '넌 안 돼'라고 말하게 하지 마라

게시글 주소: https://iu.orbi.kr/00024214181

정말 2월부터 지금까지 

컴퓨터, 노트북 앞에 앉아있음에도

'작업해야 하는데,,,'라는 압박감이 없는 건

지금이 처음이고 

8월까지만 그럴 거 같아서,

(주간 KISS 끝, Masterpiece 끝. Yay!)


오르비 고인물 분들에겐 익숙한 이야기도 있지만


또 삘오면 써야 하는 작가 기질이 있어서

써봅니다.




1. 나는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

고1 때 국수'영' 모의고사 평균등급이 34'5'였고,

(지금 영어 가르치는 사람, 네 맞습니다.)

고1말에 무언가 내 머리를 'bang'하고 쳐서

공부를 시작했다.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몰입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몰입에 말이라는 것은 감정적으로 방해된다고 생각했다.


고2 때 모의고사 평균 2등급으로 올렸다.

내신도 문과에서 전교 한자리 수로 급상승했다.

(지방 일반고의 모의고사와 내신의 갭)

(고1 시절 내신 전교 세자리 수)


상승세를 타던 중, 목표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고2 말, 서울대를 목표로 삼았다.

이런 야망을 품으면서도 나는 참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현재 모의고사가 평균 2등급인데,

그것도 고2 모의고사.

서울대 문과를 가려면 전과목

(그 당시 헬국사 포함 9과목) 

1등급 탑 백분위를 찍어야 했다.

내가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국사도 안 했고.

헌데 나름 전과목 1컷 정도는 

수능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마침 그 타이밍에 '제리 맥과이어'라는

탐크루즈 주연의 스포츠 에이전트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본 나는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잡았다.


이 강렬한 목표를 잡은 후, 힘들때마다

헤이해질 때마다 나를 잡아주었던 건

이 서울대, 였다.

집중을 덜 한다 생각이 들면

노트에, 책상에 '샤, 샤, 샤, 샤'

'SNU SNU SNU SNU'를 반복해서 적었다.


지방일반고였기에 모의고사 평균 2등급 정도였지만

아마 아직도 적지 않은 학교들이 그렇듯,

학교에서는 문이과 상위권들을 위한 독서실 반을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내 자리에,

나는 'SNU'를 매직으로 크게 적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공부를,

밤 10시에 집에 와서는 줄넘기, 싯업, 푸시업, 턱걸이를,

2주에 한 번 주말은 서울에 있는 체대입시학원에서

전공을 배우며 서울대를 향한 꿈을 키워가던 

내 독서실 자리 SNU 아래에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뭐지?



'서울대? 서남대겠지 ㅋㅋ'

(서남대에는 no offense입니다)



머리가 다시 한번 bang했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정말 정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독기'를 품었다.

밥먹으면서 영어단어를 외웠고

푸시업을 하면서 영어단어를 봤다.


그리고 그 해 수능에서,

나는 문과 전교 1등을 찍었다.

지방 일반고였고, 

스카이에는 조금 부족한 점수긴 했지만,

'체대입시'를 하면서 이룬 결과였다.


나의 책상에 '서남대'를 적은 학생에게,

내가 서울대를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학교에서 내가 안 가면 누가 가겠냐

를 증명하듯이.


아쉽게도 나는 그 해 서울대를 가진 못했다.

'말'을 안 하며 몰입하던 이 학생은

2차 '면접'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낙방했다.




2. 삼수를 하고 돌고 돌아 

외대 영어통번역학과를 왔다.

서울대를 갈 점수는 안 나왔기에

다른 학벌이나 전공은 별 의미 없다 싶었다.

이 죽일놈의 책임감, 독립심 때문에

4년 전액 장학이면 되었고,

그냥 이제 수능이라는 목표를 정리하면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먹고 살지는 모르겠는데

영어를 X라 잘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먹고 살든

'큰 무기'가 될 거란 전략적 판단이었다.


또한,

나에게는 서울대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될 목표가 필요했다.

영어통번역학과와 관련된 멋진 일이 뭐가 있을까 알아보던 중,

'통역장교'가 눈에 들어왔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6%B5%EC%97%AD%EC%9E%A5%EA%B5%9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23/2016092302011.html

[Why] 지원자 70%가 海外유학파라는 통역장교 시험… "하버드大 출신도 떨어지는 걸 봤죠"

"어…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아니죠. 'in the immediate term'은 '단기적으로'라고 해석해야죠. 여러분, 뜻이 많은 'te..

news.chosun.com



생각해보면 나는 그리 합리적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아니라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

굉장히 감정적이다.

감정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미사여구로 나의 목표 설정에 

그럴싸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그러니 가끔 존경한다...고 하시는 분들,

그러지마셔요 부담스럽습니다 소시민입니다 ㅠ)

서울대를 가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라든지,

통역장교를 가서 나의 재능을 국가에 봉사.... 라든지.

100%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서울대도, 통역장교라는 목표도, 생각해보면

'와 진짜 X간지, 진짜 멋있다, 최고다'라는

나의 '심장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에,

'나 저거 해야겠다'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현재 나의 실력이나, 기타 현실적 여건은 별로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잘못된 판단이었을 수 있다.

'수능영어'만 잘보고 온 나는,

무려 외대 영어통번역학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을 못했다.

이는 이 글을 보는 국내파 정시 영어 관련 전공들이

'극히, 심히' 공감할 것이다.

국내파여도 외고라서 좀 더 실용영어 노출이 많았던 친구들,

혹은 CD어학원 출신 등 나름 부모님의 재력으로

양질의 영어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그나마 나은데

(부모님께 감사하세요. 큰 절하세요.)

정말 나처럼, 우직하게 reading, grammar 공부만 해서

실용영어에 노출이 1도 없이 

일반고에서 온 친구들은 정말, 많이, 힘들어 한다.


그리고 졸업할 때 이 그룹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결국 이 스피킹, 라이팅이라는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영어 토론이 많은 수업을 최대한 피해 듣고 졸업하는 부류,

그리고 국내파인데도 불구하고, 대학에 와서 엄청난 노력을 통해

'실력자'로 졸업하는 소수.


뭐.. 역시 '팩트' '현상'만 말하자면 

전자에는 아무래도 XY유전자가 많다.

그리고 나는 그 부류에 끼고 싶지 않았다.

통역장교라는 아주 멋진 걸 해야겠거든.


대학교 1,2학년 때 내 삶은 마치 수험생이었다.

수능 수험생이 한가지에만 몰두한다면,

나는 여러가지로 하루를 꽉 채운다는 것 뿐.

학과 수업, 동아리, 과외를 하면서

그 외 생기는 모든 자투리 시간과 주말은

'영어'를 닥치는대로 하는데 쓴다.

전화영어, 바이블 스터디(무교입니다), 기숙사 영어수업

발음교정학원...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영어(수능말고)잘하는 '방법'을 

물어보는데, '방법'은 이미 시중에 차고 넘칩니다.

무슨 확실한 best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방법 좀 그만 찾으세요.

제가 보기엔 님이 '고시'처럼 '수능' 할 때처럼

영어에 적어도 1,2년 미친듯이 빠질 수 있냐,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족함을 느끼던 때,

학과의 친한 선배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통역장교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더니

'야 해외 살다온 누구누구도 통역병 떨어지더라..

통역장교는 더 어렵지 않겠어?'

라고 했다.

서남대,가 떠올랐다.

이번엔 그 can't를 can으로 꼭 바꾸고 싶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3년 간의 노력으로 이제는 깨나 실력이 늘었지만

역시, 아직도 너무나 너무나 부족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준비했는데,

세상에는 영어를 고급지게 미친듯이 잘하는

해외파들이(그냥 와썹파 말고) 너무나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학교 졸업 준비로 제대로 통역 공부를 하지 못하고 본

첫 시험, 낙방.

두번째, 세번째 시험.

육해공 통역장교 중 육군이 선발 인원을 1/3로 줄여버린다.

마치 서연고 중에 한 곳에서 갑자기 정시 인원을 1/3로 줄인 거랑 비슷하다.

그리고 영한통역, 한영통역 중 각각 한번씩 망하면서 낙방.


많이 힘들었다.

어두운 겨울이 계속 되었다.

우울증 약도 먹었다.

현실과 이상의 갭으로 인한 그 무기력감의 수개월은

이루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어느덧 따스한 봄이 완연하였고,

시험 한 달 전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한 번 빛을 향해 나가보기로 했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이번엔 어떻게 '맘편히' 볼 것인가만 생각했다.


그렇게 네 번, 사수 끝에

나는 정말 순수 국내파 통역장교가 되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나한테 배우는 친구들.

KISS EBS와 Masterpiece를 통해 알겠지만

션티라는 사람은 수능영어 전문가이면서

일반영어도 국내파로서 정말 거의 top을 찍은  

사람이라는 것.

그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 잊지 마시길.




3. 20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20대를 보내며

연애를 몇 번 해보면 알겠지만

연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내가 애매한데 하는 연애

내가 퍼다주는 연애

둘이 친구였는데 발전하는 연애..


그리고 지금 말하는 이 연애는

내가 거의 첫눈에 반했다,

라고 생각한 몇 살 연상과의 연애였다.

당시 나는 과외를 많이 하고 있었다.

대략 5~8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때는 2,3개였는데

뭔가 이 정도 개수가 되자 이 죽일놈의 책임감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8월이 되었고, 나는 과외에서 그냥 입으로만 설명하던

ebs 중요지문 해설과 변형 포인트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과외생들에게 선물로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대략 150~200개 지문이면 될듯했다.

전자책으로 올려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참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감정이 한 번 꽂히자,

나는 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카페에 살았다.

그 누나가 일정이 있는 곳 근처의 카페에서 일을 했고,

그 누나는 일이 끝나고 카페로 왔다.

그리고 내가 하던 일을 몇 번 지켜보던 이 누나는

물론 표정, 말투는 농반진반이었지만,

"이거 누가 산다고 이렇게 만드는 거야 ㅠㅠ

강사도 아니고 과외쌤인데 너무 오바하는거 아니야?"


뭐... 학부 때 순수미술 전공이었기에

내 PPT 디자인이 더 같잖게 보였을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말에 그만둘 내가 아니었고,

오히려 자극을 받은 나는

나는 폭주기관차처럼 두 달 동안 작업해

10월에 전자책으로 이 자료를 올렸고,

이 자료는 전자책 역대 최대 매출인 2천 이상을 찍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 종이책으로 공급하는 그 전자책은

지난 5년 간 사실상 그 수익이 

수개월 간 부은 노력이나 돈을 고려하면

의미가 없는 수준에서

내년에는 드디어,

영어연구소를 차려 어디 사무실이라도 얻는다고 하면

보증금이 될 수 있는 인세를 기대하고 있다.


5년 간의 길고 긴 가난한 작가의 카페 생활이었고,

이제는 소박하게나마 그 시절을 청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작품'을 만들려 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려 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과외 개수만 더 늘려 뛰었다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후회는 없다.

더 큰 물에서 놀기 위해서는

그 작은 물에서 나오기 위한 뼈저리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


수능이 세 달 남았다.

더 늦기 전에 이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정말 뒤집을 수 있는 시점이다.

무슨 시험이든 '막판'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수능보다 더 방대한 양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고시'도 마찬가지다.


준비한 사람이 아니라 쉬이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이 지켜본 결과 맞다.

결국 누가 막판 세 달 몰아붙이느냐.

하  늦었나 어떡하지 가능한가... 

의심만 하다 끝나지 말고.

혹은

하 이정도면 나 꽤 하네.. 

이대로 하면 거기 가겠다 깝치지 말고.


수능 한 달 전은 모르겠다.

'뒤집을 수 있을까요?'

몰라. 

근데 지금?

'어 가능. 당장 카톡 유튭부터 지우고 ㅇㅇ.'


다른 누구라도,

제일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

'넌 안 돼'라고 말하게 하지 마라.


내가 20대를 바친 저 세 가지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네가 '해봐야' 안다.


첫 케이스처럼 정말 '안 될' 수도 있겠고,

두,세번째 케이스처럼 '될' 수도 있겠다.


해봐야 안다고.

중요한 건

네가 다른 사람의 '안 될 걸...'이라는 눈초리에

흔들리지 않고,

했다는 것.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