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 [252220] · MS 2008 · 쪽지

2011-11-15 16: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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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그릇이 그 사람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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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너무 늦은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2011 수능을 친 뒤에, 신입생 오티에 간다고해서 반정도 쓴다음에 글을 쓴다쓴다하다가
결국 이제야 글을 끝맺네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참고로, 이 수기는 2012 수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수기입니다.
아니, 실패기라고 해야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편의상 반말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서 오르비 분들의 넓은 자비를 바랍니다ㅎ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내 현재 꿈은 의사이다. 그 이유를 내게 묻는다면 당황스러운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세뇌교육에 당해서,,“라고.




  물론 반 농담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반 진담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 이렇게 물은 기억이 난다.




"엄마, 나 나중에 뭐할까?"


"음.. 의사나 한의사?"


"엄마, 나 의사는 피 봐야되니까 싫어~"


"한의사는 피를 볼 일이 거의 없을 걸?"


"그럼 나 한의사할래~"




  이렇게 내 장래 희망이 결정이 났다. 그러고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장래 희망에 "한의사"라고 써놓았다. 물론 장래 희망이였을 뿐, 꿈은 아니였다. 그러니까, 미쳐볼만한 꿈은 하나도 없었다. 꿈이 생겼을 때는 한참 뒤였다.


  장래희망과 꿈의 차이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장래희망은 말 그대로 단순히 장래에 뭘 하고 싶은 건지 희망하는 것이고. 꿈은 눈을 뜬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 까지 꾸는 것이라고......







  무엇에 미쳐본다는 것. 그것의 시작은 아마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지 싶다. 그 전까지는 무슨 일을 해도 하나 진득하게 해본적도 없었고, 어느 것 하나 흥미가 없었다. 그냥 내신 기간은 시험 공부해야하는 기간이니까 공부를 했을 뿐이였고, 의외로 그것이 동기부여가 잘 되어서 300명 중에 20등 정도를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아직 장래희망이 내 꿈인 것은 아니였다.


 그런 삶을 지내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미쳐볼만 한 것을 발견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스페셜포스(이하 스포)'라는 게임이였다. 그런데 상당히 독특했던 우리집 분위기가 문제였다. 토요일 게임 30분, 일요일 게임 30분 만을 부모님께서 허용해주셨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다. 그래서 스포를 하고 싶어서 매일 몸을 배배꼬아야만 했다. 거의 중독이였던 것 같다. 어머니가 장거리를 보신다고 나갔을 때조차 그 20분을 이용하고 싶어서 몰래 컴퓨터를 해댔으니. 그렇게 살다가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내신기간'...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냐 하면 다음과 같다.


  내신 기간을 넉넉잡아 1달을 잡는다. 그리고 1주일 동안 책으로 내신 공부를 끝낸다. 그리고 남는 약 3주동안은 어머니께 인터넷 공부를 한다고 뻥을 치고는 새벽 4시까지 열심히 게임을 했다. 물론, 그러다가 어머니께 걸린 적도 많았고, 죄책감도 많이 느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스포라는 게임이 너무나도 재미가 있었고, 날 미치게 했다. 이 생활은 중3때까지 계속 되었고.., 담임선생님께 모태솔로인 나에게 '너 연애하냐?' 이런 소리까지도 들었다. 결국은 성적은 쭉쭉쭉 떨어졌고 등수는 전교 40등까지 내려갔다. 이놈의 스포라는 게임은 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내신기간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내 내신점수을 계급장으로 환산해 갔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잉여로웠던 2년이 지나가고, 중3이 끝났다. 갑자기 중3 시절의 상징인 '정신차리기' 스킬이 발동되었다. '이제 고등학생인데...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이런 생각이 날 정석을 붙들게 했다. 이는 방학때는 내신기간이 없었던 것도 한몫 했다.(내신기간이 아니면 밤새서 게임할 수 있는 핑계거리가 없기 때문이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때 10-가, 10-나를 정석으로 훑지 않았더라면.. 고1 때 수학에 엄청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반짝이는 불꽃 정석으로 입학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이제 3월모의고사를 봤다. 아마 총점은 375점이였다. 언어는 다행히도 초등학교 때, 워낙 엄격했던 컴퓨터나 TV 규율 덕에 독서를 많이 했으므로 감이 있었다. 외국어도 어머니가 열성적인 학습지 광팬이셔서 꾸준히 학습지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수리였다. 수리 3등급.. 대략 체육부를 제외한 전교생 165명 중에서 등수가 90등이였다. 평균 미만...나름 정석을 열심히 팠다고 생각했고, 자신도 나름대로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 덕에 내신 시험에서 수리를 망칠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내신 등수는 잘 나왔다. 그 당시 머리는 내신에만 최적화 되어있는 머리였나보다. 그 이후로 수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내 문제 풀이 방식은 양치기였다. 정말 친구들이 날 '양치기 소년'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정석 1번 훑은 이후로는 개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문제풀이+문제풀이+문제풀이+문제풀이.... 였다. 개념은 문제풀면서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문제만 풀어대다 보니 슬슬 모의고사 문제의 유형이 감이 왔고. 결국 6월 모의고사는 2등급, 9월 모의고사 이후로는 1등급을 찍게 되었다. 이 때부터 고3의 몰락기 때까지는 수리는 효자과목으로서의 역할을 다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의 공부법은 정말 멍청한 공부법이였다. 재수하면서 깨달았다. 수리에서 말하는 개념의 중요성을.... 조금 더 본격적으로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개념 습득 뒤에 문제풀이는 물론 중요하다. 사실.. 참고서에 있는 개념은 2% 부족한 개념이라 생각한다. 문제풀이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아직 정제가 덜 된, 거친 원석과도 같은 것이 참고서에서 습득한 개념이다. 이걸 정제하려면 문제풀이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문제 풀이를 하면서 문제에 적용되는 개념들을 문제에 맞게 다듬어 내고, 이름표를 새겨서 문제 풀이 할 때 어떤 문제를 보면, '아! 이런 개념이 필요하다~'라는 감이 와야 한다.(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이 말은 '유형을 안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적당히 정제를 했으면 마지막으로 담금질이 필요하다. 그 담금질은 다름이 아니라 오답에서 빠뜨린 개념이나 실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현역까지의 나는 이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 무작정 문제 풀고 채점하고, 그게 끝이였다.(심지어는 채점도 안했다. 풀 수 있다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실수로 틀려도 그냥 실수로 틀렸지, 이건 내 실력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내 소견으로는 이 담금질을 생략한다면 2학년 모의고사까지는 잘 견뎌낼 수 있지만 수능 수리 가형에서 1등급 이상 받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얘기는 2010 수능 실패 때 얘기하기로 하고 다시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갈까 한다.







  드디어 문이과를 정하는 2학년... 항상 사회과목이 과학과목보다 등급이 좋게 나왔고,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께서도 이과보다는 문과를 추천하셨지만, 나는 '한의사'라는 장래희망만 가지고 이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2학년이 시작되기 전의 겨울방학 때 열심히 수학1을 팠다. 수학2를 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거의 수학1 진도 나가는 것만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겨울방학이 훅 지나갔다. 그 동안에 언어는 감각유지를 해주었고, 외국어는 학원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한 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언외 할 시간도 없었으니... 과탐 선행학습은 꿈도 못 꿨다. 수학 선행학습(개념위주)은 수1정도는 이과라면 1학년 2학기 때 잡는게 나을 듯하다.)


  고등학교 2학년 모의고사는 1학년에 비해서 진동이 심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수학 진도를 따라잡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2학년 1학기는 수학1 진도를 따라 다니느라 바빴고, 2학년 2학기는 수학2를 잡느라 바빴다. 미적은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언수외의 불균형이 일어났고, 과탐은 공부하는 시간이 내신 기간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사태로 치달았다. 수리는 그래도 열심히 때려잡은 보람이 있었는지 96~100을 진동했고, 언어 1~2등급을, 외국어 또한 1~2등급을 왔다갔다 거렸다. 과탐은 1~3등급을 왔다갔다 거렸다. 내신 기간때면 1등급이 되었고, 내신기간이 지나가면 2~3등급 진동.... 그냥 내신시험을 치고 잊어버리는... 그런 스타일이였다. 이 당시에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외국어였다. 그 당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쉽게 나오는 교육청은 1등급 컷과 2등급 상위에서 줄넘기 놀이를 하곤 했으나, 조금 까다롭게 나오는 사설 모의고사는 80점대는 기본이고 항상 2등급 중하위권이였다. 그러다가 내게 반환점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7월 쯤에 친 대성 모의고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외국어를 82점 맞았고, 3등급 중하위권을 기록했다. 참 할 말이 없었다. 그 때 어머니를 붙들고 펑펑 울어댔던게 기억난다. 남자 체면이고 뭐고 그딴 거 하나도 필요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 수리 공부하는 것도 벅차서 죽겠는데, 다른 과목들이 말썽을 부리니....
  각오를 했다. 이제 수리 영역은 잠깐 보류하고 외국어 영역이란 놈을 때려잡기로. 복수를 위한 칼날을 다듬는 돌로 나는 '인강'을 택했다. 먼저, '왜 점수가 1학년에 비해많이 떨어졌을까?'를 생각해봤다. 어휘, 독해속도, 독해정확도, 듣기, 문법 정도로 나누어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부족한 점은 독해속도와 듣기였다. 따라서 나는 독해기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택했고 듣기는 매일 1 set씩 듣기로 했다. 인강은 PMP로 매일 꼬박꼬박 챙겨서 들어주었고.. 내가 이제까지 살다가 평생 안 해본 복습마저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사설을 쳐도 90점 이상을 유지했다. 물론, 부동의 1등급이라는 영역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름 만족했다.







  1학년 때 수리, 2학년 때 외국어를 중점으로 공부했다면.. 이제 고3때 남은 과목은 언어와 과탐이 남아 있었다. 고3 초기에는 수리는 아직까진 효자과목이 되어 주었고, 외국어는 불효자 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언어와 과탐에서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먼저, 언어는 오르비를 돌아다니다 알게된 '가랑비‘(언어의 기술의 고전판이다)를 위주로 공부하기로 했다. 그것을 보고 언어의 공부방향을 잡아갔다. 그전까지는 사설모의고사를 막 풀어제낀 것을 피눈물 흘리며 후회하고, 기출로만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로 끝났다. 그 당시의 수리영역과 마찬가지로 오답 분석은 커녕, 지문 분석도 하지도 않았다. 정말 비효율적인 공부였다. 과탐은 1과목들의 개념은 일단 2학년 내신 때 열심히 공부했으니 기출 문제 풀이를 위주로 했다. 이때도 마찬가지, '분석이 뭐야?'를 외치고 다녔다. 그 당시의 내 눈에는 분석은 이상한 놈들만 하는 걸로 보였다. 채점하고 맞으면 그만, 틀리면 실수로 간주하고 자만심에 찌들은 생활을 했다. 2과목으로는 화학2를 선택했고, 화2의 공부법은 2학년 당시의 1과목 공부법에 기출문제 풀이를 얹어 놓은 것 뿐이였다. 내신기간 때 개념을 열심히 익히고, 그 이후에 다량의 문제풀이 어떻게 공부를 미련곰퉁이 같이 이렇게 일관성 있게 했는지.... 아마 재수의 마수는 내 공부법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공부하다보니 모든 과탐 과목이 1~2등급 진동을 하게 되었고, 총합 180이상은 꾸준히 나와주며 대부분 1122에서 찍신이 내리면 1112정도를 찍곤 했고, 언어는 아무리 공부해도 오르지 않았다. 항상 잘봤다가 못봤다가였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였다. 언외 모두 1~2등급에서 진동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내 효자과목이였던 수리 영역이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수1이 많이 나오는 4월까지는 연속 백분위 100을 찍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수2가 일부 포함되는 6월 평가원 때는 백분위 98, 9월 평가원 때는 백분위 95를 찍었다. 급기야는 10월 모의고사에서는 백분위 92를 찍으며, 완벽한 하락세를 보여주었다. 불안했다. 너무나 불안해서 문제만 풀어제끼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문제풀이에 편향된 학습으로 성적이 떨어지고, 성적이 떨어지면 또 양치기를 해대며 뿌듯해 하고, 양치기만 하다가 또 다시 성적이 떨어지고..... 이제 10월 달이 지나자, 수리 영역은 더 이상 효자과목이 아니였다. 그냥 내겐 배신때린 과목에 불과했다.
  그렇게 불안해하며 효율이 0에 수렴하는 공부를 하고, 드디어 11월이 다가왔다. 여전히 복습의 중요성은 깨닫지도 못했다. 그냥 모의고사 풀이를 계속하고, 또 계속했다. 그래야 불안이 그나마 덜어졌으니까.... 그렇게 살다가 드.디.어 수능이 포함된 달이 내게로 왔다. 이 말은 수험생, 특히나 수능을 처음 치루는 현역들에게는 상당한 부담감을 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실패에 대한 부담감,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 이런 부정적인 심리적 요소들 때문에 공부가 안되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며 달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2010수능>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성적은 비록 의대에 모자랐지만,(고등학교 2학년 때, 의사가 되고 싶어서 한의사에서 의사로 장래희망을 바꾸었다. 이 때도, 막연한 장래희망이였다.) 여전히 목표대학은 서울대 의대였고, 수능 만점이 목표였다. 고사장은 모교로 당첨이 되었다. 고3 특유의 극도의 후달림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다행이였다. 여담이지만 나는 두려움을 통제하는 데에 재능이 없다. 발표시간에도 발표를 하면 목소리가 떨렸고, 이는 그냥 글을 읽을 때 조차도 해당되었다. 그런 그때의 나에게, 수능이란... 정말 두렵지만, 꼭 만나야 하는 강적이였다. 이제 수능 1교시로 돌아갈까 한다.
  수능 1교시. 언어영역 시간. 그래도 모교라 그런지 모의고사 치는 기분이였다. 시험지를 받기 전까지는..... 시험지를 받아들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 한 문제에, 대학이 갈리고... 내 꿈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떨렸다. 듣기 문제를 들을 때는 정말 사람이 반 쯤 미쳐갔다. 한 단어라도 놓치면, 그걸로 끝일 테니까.... 그래도, 다행히도 듣기 영역은 잘 본 것 같았다. 이제 쓰기영역,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6~10번 사이의 한 문제에서 막혔던 것 같다. 평상시의 나라면, 그냥 2분만에 안되면 넘겼을텐데, 수능 특유의 긴장감 때문에 그 문제를 6분 정도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풀지 못했다. 그냥 별표를 치고 넘어갔다.(나중에 매겨보니 틀려있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페이스가 말리자 문학 문제든 비문학 이든 모두 시력 테스트가 되어 갔다. 그렇게 풀다가, 한 지문이 남았다. 신뢰도 지문이였다. 마지막까지 시간에 쫓겨서 풀다보니 막판에는 시간이 꽤나 남아있었다. 느긋하게 풀었다. 마킹하고 나니, 거의 딱 맞게 종이 쳤다. 나름 잘 푼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것도 매기기 전까지의 얘기다.


  수능 2교시. 수리 영역 시간. 10월 이후로는 불효자 과목이였지만, 여전히 나는 수리영역을 믿고 있었다. 가장 자신 있는 과목하면, 여전히 수리였다. 그렇게 자신에 가득 차서 페이지를 넘겼다. 처음 바라본 순간 느낌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문제로 뛰어드니까 상황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2,3점짜리 문제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4점짜리 문제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다. 수리영역을 다 풀려면 반드시 4점 문제 중에 쉽게 느껴져야 하는 문제들이 반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오질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당황을 계속하다보니 실수가 생기고, 실수가 생기면 더 당황하게 되고, 다시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결국 모르는 문제를 10개 별표 치고 나자 40분이 남아있었다. 이제 남은 40분 동안, 10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한 문제에 4분.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왠 걸...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침에 이런 일이 없도록 확실히 볼 일을 보고 왔는데.... 결국 배가 아파오니 문제에 집중을 하지도 못했고, 결국 40분동안 문제와의 사투가 아니라, 배와의 사투를 하고 나니 종이 쳤다. 망했다. 거의 8문제 정도 찍은 것 같았다. 말이 8문제지.. 몇 개 찍어서 맞는다고 해도 80점 이상은 힘들 것 같았다. 수능을 포기하고 싶었다. 정말 수능이라는 놈만 아니였으면 조퇴해서 집에 가서 부모님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내 3년 동안 한 공부가 아까웠으니까. 그래서 ‘찍은 것 다 맞았겠지’라는 생각과 ‘3교시부터 만점 받으면 의대 갈 수 있다!’라고 외치며 우울한 점심을 먹었다.


  수능 3교시. 외국어 영역. 이 영역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풀어서 수능 날에는 더욱 긴장이 되곤 했다. 듣기는 경우가 더 했다. 듣기 특유의 1회성 때문에 나는 모의고사 때도 심하게 긴장하는 편이였고, 쉽게 당황하는 편이였다. 그래서 긴장을 바짝하며 그와 동시에 자기 암시를 하며 수능에 임했다. 처음에는 느낌이 괜찮았다. 이렇게 느리게 천천히 들려주는데 누가 틀리나 했다. 그런데 결국 사건은 터졌다. 놀이 공원이 나오는 3점짜리 듣기 문제를 놓쳤다. 결국 찍었다.(나중에 매겨보니 이 문제 또한 틀렸다. 아마 2010 수능 때 찍은 문제는 수리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들은 모두 틀린 듯 하다.) 그런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제 자포자기라 할까... 여튼 그런 기분이 나를 엄습하며,  이제 점점 찍은 문제에 해탈의 태도를 보여갔다. 그에 따라 긴장감도 풀리고, 희망 또한 사라져갔다.


  수능 4교시. 과탐 영역. 어떻게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시험 문제 풀때는 푸느라 바빴고, 쉬는 시간 2분은 답안지를 수험표에 옮겨 적느라 바빴다. 바쁘다는 말 빼고는 딱히 얘기할 게 없는 과탐 영역이였다.




  그렇게 수능이 끝났다. 정신없이 끝나서 화2 영역 마킹이 끝나고, 종이 치는 순간에도 고등학교 3년의 끝맺음을 했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이제 수능이 끝났구나.... 내 고등학교 생활이 이렇게 끝을 맺는구나...' 허탈했다. 이 짧은, 1일을 위해... 3년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찍어버릴 문제들을 위해,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공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사실.. 가장 허탈했던 순간은 수능 성적표를 받은 순간이였다. 이 종이표 한 장을 위해서 내가 밤을 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참 힘이 들었다.) 그렇게 반 설렘 반 허탈함으로 집에 도착했다. 바로 컴퓨터를 켰다. 메가스터디를 들어가서 채점을 하려 했으나, 아직 답안지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네이버에 수능 정답표를 피고, 하나 하나씩 내가 적어온 것과 대조해봤다.


  언어영역부터 채점을 시작했다. 45번까지 2문제 밖에 틀리지 않아서 우와~~라고 외쳐대며 기뻐했는데, 끝까지 매겨보니 마지막 신뢰도 지문에서 -4점이 나갔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결국 92점.  원점수로만 보면 나름 괜찮은 점수였지만, 수험장에서의 느낌에 비해서는 점수가 좋지 않았다.


 다음으로 수리영역 84점.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2교시 당시에 6문제 정도를 찍었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선방이였다.


 다음으로는 외국어 영역 93점. 듣기 3점짜리 문제에 피눈물을 흘렸다. 나머지 문제들은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내 실력부족이였다.


 마지막으로 과탐영역. 성적이 기억이 안 난다.... 여튼 그렇게 해서 총점이 442점인가 그랬을 것이다. 총점만 보고 의대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해 6월 9월이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니 애들이 참 표정이 가지각색이였다. 웃는 아이, 힘든 아이, 별 감흥 없는 아이말고도 더 있었다. 그렇게 눈으로 아이들의 표정을 구경할 동안, 귀에는 잘 친 애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겉으로는 잘 쳤다고 웃어주었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쓰렸다. 나는 원래 이런 놈이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와 함께, 내가 잘 친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잉여생활로 현실 도피를 하다 비정한 그날, 성적표 통지일이 왔다.


  백분위로 언수외 물1화1생1화2가 94 92 95 / 96 85 99 96... 등급은 221/1312였다. 외국어 영역이 1등급인데 백분위가 95, 화2 영역은 2등급인데 백분위가 96이라는 것 보고 신기해 한 것 빼고는 별다른 사항이 없었다. 의대 갈 성적이 아니라는 것만 다시 느끼면 되는 성적표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낙천적이였던 것 같다. 안될 걸 알면서도 왠지 쓰면 그 학교는 펑크가 나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매일 나를 가지고 놀았다. '그냥 잘 될꺼야...'하는 막연한 생각이 나를 잠식해 갔다.


  그렇게 막연히 잘 될꺼라는 긍정적 마인드로 가나군 모두 의대를 쓰고 다시 잉여생활로 돌아갔다. 사실, 그 성적으로는 배치표 상으로 연세대 공대도 힘들었고 한양대 공대를 지원했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내 헛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반드시, 의대를 쓰고 싶었다. 결국, 결과는 3패. 이 때 세상을 배웠다. 사실, 그 전까지는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갈 줄 알았다. 그래서 '될 대로 되겠지'라는 생각이 항상 나를 지배했다. 그런데, 3패라는 현실은 나를 일깨웠다. '망상은 꾸는게 아니구나.. 냉혹한  현실이라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조금씩 싹텄다. 그 싹은 이제 무럭무럭 자라서 나에게 꿈과 망상을 구분하게 해주는 약이 되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재수를 결정한 1월.(예비 번호를 보고 이미 포기했기 때문에 빠른 재수 결정이 가능했다.) 개강 날짜 까지는 대략 한 달이 남아있었다. 이 한 달 만큼은 내가 원하는 것들로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노력은 했지만 허무하게 끝나버린 한 달을 보내고, 매일 숨마쿰라우데로 2시간 정도 수학 복습하고 언외에 30분씩만 투자하고, 과탐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여튼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꼭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모두 이루지 못한 채 겨울의 눈이 어느새 따뜻한 봄햇살에 녹아 내렸고, 초라하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수능을 망친 고등학생의 졸업식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붙은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면, 이미 늦어버린 나를 생각하면 졸업식은 너무나도 가고 싶지 않은 행사장에 불과했다.(그래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졸업식 때 참가한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열등감은 그 순간이지만, 3년의 치열했던 추억의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재수를 결심한 현역들에게 반드시 무슨 일은 있어도 졸업식은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막 재수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그 당시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넌 왜... 재수하는 건데? 이렇게 힘들고 하고 싶지도 않은 걸 왜 해?"


"꿈이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걸 평생동안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 네 꿈은 뭔데?"


"글쎄......"




  답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너무나도 많았다. 펜 하나로 사람들을 웃게, 울게 만들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참된 교사도 되고 싶었고, 수학을 계속 공부하는 수학자도 되고 싶었고,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도 되고 싶었고, 그 말고도 하고 싶은게 너무나 많았다. 또 다른 기준이 필요했다. 내가 하고 싶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라는 기준이 필요했다.


  첫째, 가장하고 싶었던 작가는 성공할 확률이 너무나도 희박했고, 내게 그런 재능이 있을지 생각조차 안해본 나에게 그런 모험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실패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짐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싫었다. 그 다음에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교사는 내 자식들을 똑바로 키우고, 주변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생기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다음으로, 수학자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 또한 작가와 비슷한 생각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의사였다. 의사는 사람들을 살리는 보람도 있고, 금전적으로 생각했을 때,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다른 직업에 비해 높았다. 최소한 자식들 학비 걱정, 부모님 용돈 걱정은 안 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 아플 때 병원내의 절차를 좀 더 간단하게 해서 도와줄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나를 끌리게 했다. 그래서, 결국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소원을 더 넣자면 환자들의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병도 치유할 수 있는,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종합하자면 "나도 살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도 살리고 환자들도 살리는,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너무 세속적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내 꿈이 된 이상 후회없이 이 길을 믿고 쭉 나아가고 싶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순간부터, 나는 인생의 방향을 아직도 개략적이지만 전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장래희망이 얄팍하게나마 꿈이 되는 순간이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단순한 '장래 희망'이였을 때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었지만, 희미하게나마 '꿈'이라는 존재가 내 가슴에 품게된 순간부터는 유혹을 좀 더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꿈을 향한 질주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쉽게 말하면, 나 자신의 그릇이 좀 더 많은 것들을 품기 위해 커지는 순간이였다.





  2월 중순에 드디어 학원 개강을 했다. 지방에서 사는 나로서는 서울의 5층짜리 학원이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였고, 재수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여기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어떻게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나'와 같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힘들었다. 친구들이, 가족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휴대폰마저도 없애야 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달랠 방법마저도 차단당했다. 아무나 붙들고 미친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입이 너무나도 근질근질했다. 그 때, 너무 힘들어서 휴대폰을 끊기 전에 어머니에게 하소연했다.




"엄마... 나 여기가 너무 싫어. 여기 있으면 사람이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아. 여기 말고.... 내가 아는 친구가 있는 곳에서 재수하면 안될까?“라고..........


  설득하고 설득했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나도 완강하셨다. 이것도 못할 것 같으면, 나중에 더 큰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그땐 어떻게 할 꺼냐고... 이런 환경에서도 힘들다고 징징댈 것 같으면 그냥 인생을 포기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아버지의 충고에 감사하지만, 그 순간의 나로서는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럽고 야속할 수가 없었다. '인생을 포기하라'라는 말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나는 인생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생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에겐 인생이란 '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였으니까. 만약, 이 꿈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꿋꿋이 의견을 개진시켜나가며 학원을 친구가 다니던 학원으로 갈아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학원을 계속 다녀야 했다. 그렇다고 힘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였다. 오히려 그 이후로 2주 동안은 이제까지 겪은 고생 중에 가장 힘들었던 고생으로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오죽했으면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라지도 않으니, 미워할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까. 그 2주가 내 주변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힘들었던 2주가 가고... 이제 나름 친구들도 생기고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되었다.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수능 실패 원인'이였다. 내가 왜 수능을 망쳤을까... 어떻게 3학년 때 본 모의고사 중에서 최악으로 친 모의고사보다도 못칠 수가 있을까.. 하며 자신을 자책하며 원인을 찾아갔다. 고민을 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1. 자만 - 학업성취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지역에서 살다보니, 평상시의 성적이 지방의대도 간당간당할 전국 1%에 해당하는 성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교에서 최상위권 축에 들수 있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보면 매우 좋은 성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잘한다는 소리만 들었다. 항상 겸손하는 척 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자만에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샌가 '문제를 무시하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다. 모의고사에서든 일반 문제집에서든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어디가 부족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냥 '실수겠지~ 나중엔 맞을거야'하는 생각에 똑바로 오답을 체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실수의 빈도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이는 수리영역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게 되어서, 내 고3  수리영역의 몰락기를 데려왔다.


 2. 양치기에 치우친 학습 - 나는 항상 양을 중시해왔다. '무엇을 어느정도로 공부했느냐'보다는 '얼마나 공부했느냐'에 중점을 두는 스타일이였다. 이는 3등급 정도였던 내 수리영역과 매우 저조했던 과탐영역을 2등급까지 끌어올리는데에는 기여를 했지만. 그 뿐이였다. 운이 좋아 1등급을 맞게 되는, 그런 실력까지였지, '부동의 1등급' 이런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3. 개념 부족 - 2번과 어찌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양치기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샌가 문제풀이만 하게 되었고, 이는 개념을 등한시하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는 '수리영역'과 '과탐'영역에 치명적인 결과를 끼쳤다.




  이렇게 3가지 요인을 강제재수의 원인으로 잡은 나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먼저, '자만'의 해결책으로는, 뻔한 답이지만 '모든 문제에 겸손하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양치기에 치우친 학습'의 해결책으로는 '공부의 질을 중시하는, 예를 들자면 문제 하나하나를 풀더라도 꼼꼼히 보며 해설지를 볼 때도 꼼꼼히 보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념 부족'은 '개념서를 항상 끼고 공부하는 습관'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 세 가지 해결책은 내 재수 생활의 좌우명이나 다름없었다. 재수하려고 하는 학생들도 '실수'라고 합리화하지 말고, 냉혹한 현실을 자각하고 그 실패에 대한 요인들을 제거해나가는 것을 재수 생활의 목표로 삼았으면 한다.





  1달 정도가 지나자, 고독이라는 맨땅에 헤딩을 해서 이마가 한참 얼얼할 무렵, 슬슬 학원 생활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도 점점 익숙해 갔고, 없던 말주변도 생겨서 어색하게나마 인간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인간관계가 진정되어가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선을 두었다. 그 이야기는 차후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방황기를 끝내고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있는 재수생활은 내 고등학교 3년과는 차이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내 재수 때의 수능 성적과 현역 때의 수능 성적이 다를 수 있으니까. 뭔가 달라진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꿈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단계의 첫번 째는 다름아닌 '수업 잘 듣기'였다. 내 3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은 대학수업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에 안들면 뒷자리에 앉아서 다른 과목을 공부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듣는 수업들은 한 학기동안 '2~3개'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과목을 취사선택하여 공부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허세끼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게 수업도 골라 듣는다~'이런 식의 유치한 자부심 같은 것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쪽팔리는 일이다. 여튼 그때는 그러한 공부 방식이 좋은 줄 알았는데.... 막상 재수하면서 '나름대로' 나를 "객관화"시켜보니 상당한 단점들이 눈에 보였다. 그 단점들은 다음과 같다.




1. 공부의 불균형


  수업을 취사 선택하다보면 자연히 자습시간이 느는데, 그 시간을 죄다 수학에다 투자했다. 그러다보니 수학을 편식하게 되었고, 이는 공부양의 과목간 불균형을 불러와서 자연스레 언외탐, 특히나 탐구영역은 빈약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사실 이 수학에 투자한 것도 지나친 양치기로 인해서 시간당 실질 공부량은 0에 수렴했다... 뭐든지 '적당히' 공부 해주는게 좋은 듯하다. 실질 공부량의 그래프는 대충 그리면 y=루트x의 그래프와 비슷하게 되는데, 이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하나에만 투자하는 것 보다는, 적당히 여러 과목에 시간을 분배하는게 각기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게 바람직한 것 같다.)


2. 복습의 부재


  이는 어찌보면 핑계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무시하다보니, 독학을 많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학할 때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을때와는 달리 "복습"할 때(예를 들어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면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야자시간)를 찾지를 못하게 된다. 독학하면 어디서 진도를 끊고 다시 되돌아가야 할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되돌아가자니 너무 복습의 양이 적은 것 같고.. 그래서 진도를 더 나가다 보면 복습의 양이 감당할 정도를 벗어나게되어 복습을 포기하고.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수업을 듣는 것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것보다 복습의 측면에서 더 바람직한 듯 하다.


3. 약점체크 시간의 부재


  이는 상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는 학생들 이상의 향하는 학생들에게 비교적 많이 해당될거라 생각된다. 이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그 과목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정도는 있겠지만 자신의 약점들을 똑바로 체크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항목이겠지만 특히나 이럴 때는 공부의 빈틈을 찾기 힘들고, 문제 풀이때도 타성에 젖어서 풀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수준의 학생들보다는 약점을 찾는 것이 힘들다. 이때, 사실상 공부의 목적은 '실력 향상'이 아니라 '실력 유지'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지 않을려면 무협 소설들 처럼 절정고수가 되는 순간의 '깨달음'과 같은 비슷한 개념이 필요한데, 이를 체득하는 방법은은 아무래도 학생 자신들이 혼자 찾기보다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다가 하나를 건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고3시절의 국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신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 수업에서 1교시에 아는 9개를 듣다가 모르는 1개를 알면 그 수업은 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맞는 말씀인 것 같다.


  여기서 2번 같은 경우에는 나의 경우에만 해당 될 수도 있지만 1,3번의 경우에는 많은 학생들이 해당될거라 생각한다. 좀 참고하셔서 공부할 때 왠만하면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어주셨으면 한다.


  이런 3가지를 고려하여 공부법을 바꿔가자, 공부의 초점을 독학에서 수업으로 차차 옮겨갔고, 이제 복습에도 점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학원 개강 후 6월 달까지의 나는, 내 평생 가장 당당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 순간마다 힘들어 했지만, 막상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고 있노라면,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말 그대로, 하늘 앞에도 고개를 뻣뻣이 쳐들 수 있었다.


  물론 힘든 것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고, 잠이 와도 어떻게든 잠과의 전쟁에서 이기려고 했으니까. 앞에서 약간 언급했듯, 난 친구들과의 관계를 정말이지 적당히만 유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선택이지만,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시절의 나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옛날 고1 시절의 트라우마가 살금살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모든 것에 상처를 쉽게 받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그럴진대, 내가 고1 때는 더 심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자퇴하고 싶다는 것을 표출할 정도로 내겐 끔찍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의 나는 고1 특유의 독기를 좀 많이 품고 있었다. 그래서 수업도 열심히 듣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떠들지 않고 복습만 했다. 그리고 친구는 같은 중학교 친구들과만 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더라도 재수 시절의 나처럼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지내는 것까진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꿈꾸던 것들에 조금씩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였다.(비록 지금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 장래희망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그런데 그 이후에 내 귀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쟤 재수없지 않아? 매일 공부만 해”


  물론 재수시절의 독기를 그대로만 품고 있었다면, 이런 말 따위 들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갓 중학교를 벗어난 아이가, 독기를 품어봤자 얼마나 품고 있었겠는가. 그대로 상처를 받고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방황한 것 같다.


  ‘내가 이런 곳에서 공부를 바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애들이 널린 이 곳에 제대로 된 친구가 있기나 할까?’


라는 생각에 ‘자퇴’라는 말을 부모님께 꺼내기도 했다. 물론 부모님은 학교를 계속 다니라고 말씀해주셨기에 치기어린 행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였고, 이는 알게 모르게 내 무의식에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트라우마가 재수시절의 날 괴롭히고 있었다. 물론 그 당시의 재수학원 같은 반 아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였기 때문에 날 터치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피해망상에라도 걸린 양 괜히 애들이 날 피하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꿋꿋이 견뎌야 했다. 더는 떨어질게 없는 인생이였으니깐. 이제까지 쓴 맛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나에게, 2010 수능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폐쇄적인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내 고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른 아침 8시 반 즈음이나 저녁시간 대에 전화를 해대는 나는, 아마 그들에게 상당한 민폐거리였을 것이다. 그들의 눈물겨운 희생(?)덕에, 난 그렇게 약 10분에서 30분 내외의 시간으로 통화를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다. 정말 그 당시에는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는데, 사람은 역시 이기적인 동물인가 보다. 점점 그 고마움이 잊혀지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들의 도움을 되새기며 고마워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이러지 않고, 영원히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 잘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난 재수 시작했을 때부터 이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후회가 없었고, 이는 왠만한 다른 재수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여기까지만 합격수기라고 생각하고 이 이후로는 실패기라고 생각해서,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6월 모의고사를 쳤다. 별로 긴장은 되지 않았다. 작년에 이미 겪어봤기 때문이다. 모의평가와 수능과의 괴리감을.... 그래서 사설 모의고사 치는 마인드로 시험을 치렀다. 문제는 그냥 평이했다. 언수외 합 292. 채점하고 “대박이다~ 올레!~~”이러면서 씩 웃었지만... 막상 성적표를 까고 나니 0.2~0.3%. 소위 말하는 메이저 의대에는 원서조차 못 써볼 성적이였다. 그런데 그 성적에는 함정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다름아닌 백분위와 등급으로 인한 성적 착시효과였다. 98 99 99 / 100 99 98 98이였고 등급은 111/1111이였다. 이런 성적은 고3 4월달 모의고사 이후로는 처음이였고, 특히나 올1은 처음이였다. 그 덕에 조금 헤이해지게 되었다. 굳이 풀어 말하자면


  “재수하니까 성적이 오르네? 작년 수능은 의대 광탈 수준이였는데... 벌써 이 정도면 수능 때는 0.1% 안이 가능하겠지?”


라는 지금 생각하면,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이 때를 기점으로 해서 망하는 재수생들이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재수를 하는 학생들은, 특히나 6월달 모의고사를 잘 친 학생들은, 6월달까지도 충분히 노력했겠지만, 그 이후로 더 노력을 해야 한다. 학원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6월 모의고사는 잘 친 학생한테도 문제가 되고, 못 본 학생들한테도 문제가 된다. 잘 친 학생들은 6월 모의고사 이후로 자만할 가능성이 크고, 못 본 학생들은 그 이후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6월 모의고사 이후로 더욱 조심해야한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재수 중반에 가장 와닿았어야 했을 말이 아닐까 싶다.


  내게 재수 때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서 시작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때를 택할 것이다. 그 때 전에는 후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후회와 실망이 가득찬 시기뿐이니까. 그래도 나쁜 일만 생겼던 것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고마운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친구를 사귀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 짝꿍이 너무나도 괜찮았기’ 때문이였다. 6월 즈음에 한 친구가 내 옆에 앉기로 했다. 우리 반은 짝을 2주마다 바꿔 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랑 뭔가 맞는게 있었다. 항상 얼굴에 웃음 가득한 재밌는 놈이였다. 그렇게 한 친구를 사귀고 나자, 다른 친구들도 마치 새끼치듯 내가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 아마 그 때의 나는 너무나도 인간관계에 메말라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여튼 이렇게 사귄 친구들은 아직도 고마운 친구들로 남아있다. 그놈들과 같이 먹는 점심 식사, 그리고 이따금씩 학사에서 주는 급식을 때려치우고 친구들을 졸졸 따라가서 먹던 저녁 외식, 아직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참 고마운 일이다.







  사실 내 나태함은 앞에서 말한 재수 친구들과는 거의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그냥 오후 4시에 수업이 파하면 바로 학사에 쳐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내가 사는 학사에 T-wifi zone이 터졌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내 졸업 선물로 받았던 2세대 아이팟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부터 아이팟을 통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따라서 결국 컴퓨터가 내 앞에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점점 그를 통해서 내 공부량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성적도 하락세를 찍기 시작했다. 이는 10월 중반과 후반에 정점을 찍었다.


  매일 자기 전에 반성을 한다. 일기에 내 욕을 써보기도 했고, 매일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해달라”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일어나는 일은 쳇바퀴와 같은 방황 뿐이였다. 정말 한 마디 말로 충고하고 싶다. ‘나쁜 일은 시작도 하지 말라’라고...... 나쁜 곳에 발을 한 번 디디는 순간, 빠져나오기는 정말 힘들다. 나도 그랬다. 3월의 그 초심 덕에 어떻게든 끊었던 나쁜 것들을 다시 맛보는 순간, 그것들의 유혹을 뿌리치는 건 너무도 힘들었다.




<9월 모의고사>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던 나였지만, 초기에는 ‘그냥 삶에 조금 여유가 생겼을 뿐일거야...’라고 생각하며 부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내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택한 방법은 9월 모의고사를 모교에서 보는 것이였다. 내가 재수 결정을 내리고 씁쓸하게 학교를 찾던 졸업식 날의 그 슬픈 향수를 다시 맛보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모교를 찾았다. 교문을 들어섰다. 기분이 참 묘했다. ‘내가 다시 여기 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치 현역도 아니고, 재수생도 아닌, 1.5수생 정도의 느낌이랄까...그런 멍청하고 마치 주변인인 양 시험장에 들어갔다. 반가운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그제야 ‘아 나 재수생이였지..’하며 조금은 실감이 났다. 언어영역 시험지를 핀다. 눈앞에 보이는 ‘2011학년도 9월 모의평가’... 이제 재수생으로 돌아온다. 눈앞에 보이는 숫자는 2010이 아닌, 2011이엿다. 그래... 그랬지 난 재수생이였지. 그런 생각으로 시험지를 받아들고 혼신을 다해 풀었다. 1년이 지나도 푸는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어 영역과 외국어 시간에는 늘 그랬듯이 시간에 허덕였고, 수리도 한 문제를 들고 10분 동안 낑낑거리고... 그러고 보니 수리 한 문제가 생각난다. 아마 tan세타를 구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 문제를 들고 거의 20분 가까이 씨름했다. 그런데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가슴은 답답해졌다. 정말 뛰쳐나가고 싶었다. 어디 토해내고 싶었다. 왜 내가 1년 동안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도, 작년 9월 모의평가처럼 못 푸는 문제가 나올까...라고 누구에게 외쳐대고 싶었다. 그냥 나 자신이 한심했다. 좀 더 강하게 말하면, 쓰레기 같았다. 겨우 이럴려고 부모님 등쳐먹으면서 공부한건가라는 자괴감이 날 찾아왔다. 그래도 그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이미 이 길은 선택했기 때문에, 항상 선택이라는건 책임을 동반하는 법이다. 나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때문에 묵묵히 조용한 울음을 참고 펜을 꽉 붙들었다. 수리영역을 치고난 뒤의 나는 패배자였다. 마치 악몽을 꾼듯 등과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그 이후로는 그 악몽으로 인해서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다만 수리영역을 채점한 뒤의 그 느낌만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 9월의 패배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어영역은 비록 2등급이였지만, 수리 88점이 미적효과로 인해서 백분위가 100이 나왔기 때문이다. 또다시 자만이 찾아왔다. 작년의 백분위 92에 비하면, 너무나도 행복한 결과였다. 그것에 만족하고 또 성적이 떨어지고, 그 성적에 만족하고 그리고 위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수능 약 1주 전까지 시간이 흘렀다.


  수능 약 1주 전, 드디어 학원 종강이 이루어졌다. 약간은 울컥했지만, 졸업식만큼은 아니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2월의 한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듯하다. 정말이지 2월의 한은 내 고등학교 3년을 압축한 정도의 설움이였는데... 약간은 웃기지도 않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때 많이 울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었더라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든지 보상을 받을 때, 그 성취감은 그동안의 노력과 비례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노력과 한은 비례한다. 아 물론 예외도 있다. 바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이지 신께 축복받은 소수일 뿐이다. 그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죄다 잠깐 잠깐 즐거워하더라도, 결국 힘들 때가 온다. 그것을 우리는 슬럼프라고 부른다. 이 슬럼프를 뛰어넘으면 실력도 함께 뛰어오른다. 하지만 이 슬럼프 앞에 굴복해버리면 실력도 정체되고 만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앞에서 한 얘기도 그렇게 개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여튼 정들었던 재수친구들과도 아웃백에서 런치메뉴로 나름의 소소한 종강파티를 연 뒤, 날 데리러 오신 고마운 부모님과 함께 안동으로 왔다. 한과 아쉬움은 서울에 놔두고서...


  드디어 안동 땅을 밟았다. 기분탓인지 안동의 공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아마 아직도 좋은 것을 보면 그때만의 착각은 아닌듯하다. 이제 남은 것은 약 1주.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였다. 하지만, 한과 아쉬움을 떠나보낸 기념으로 뭔가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일을 내보고 싶었다. 내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만큼은 약 2월의 85% 수준으로 열심히 했다. 수능 막바지에 공부방법은 따로 없었다. 그저 평상시 보던대로 기출을 보았고, 다만 시간안배에 좀 더 초점을 두었을 뿐이다. 기출을 보고 보고 또다시 봤다. 아참, 수리영역과 과탐영역에서 한 가지 색다른게 있었다면 그것은 개념노트와 오답노트였다(개념노트는 수리영역에만 해당).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실수들을 다시 보며 절대로 수능 시험장에서는 이런 실수를 안하겠노라고 되뇌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물론 아예 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같이 재수하는 정말 친한 친구들과 도립도서관에서 낙동강까지 이야기하며 걸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휴식과 공부의 경계선을 확실히 그었다. 이번 기회마저 놓칠 수는 없었다.


  드디어 수능 당일 전날, 공부를 함께 끝낸 두 친구들과 나란히 도립도서관 입구를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둑했다. 기분은 싱숭맹숭했지만, 최대한 밝은 웃음을 보여주며 내 친구들을 보내줬다. 진심으로 모두 다 잘 되었으면 했었다. 나는 거기서 아마 20분 동안 기다렸던 것 같다. 아버지가 조금 늦게 오셨기 때문이다. 그동안에 나는 계속 도립도서관 주변을 서성거렸다. 도립도서관의 벤치 쪽에는, 복주여중 운동장이 있었다. 거기에서 몸을 기대서 운동장을 바라봤다.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운동장.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가우면서 씁쓸했다. 하지만 그 감상에서 금방 빠져나왔다. 내일이 결전의 날이였기 때문에, 벌써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안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굳은 마음으로 아버지께서 태워주시는 차를 탔다.


  집안은 평상시 집대로 훈훈했지만 왠지 모르게 조용했다. 아마 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서로 약속하셨나보다 싶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일기를 썼다. 마지막 다짐을 담은 일기를 덮은 순간, 문득 일기를 다시 피고 싶어졌다. 일기를 폈다. 일기는 자주 쓰지 않았기에, 찬찬히 훑었다. 거의 30분 정도 본 것 같다. 내 기억에 남는 일기는 역시 2010 수능 전날에 썼던 일기와, 재수 시절 갓 서울 올라왔을 때의 일기였다. 그때를 생각해보니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것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자부심에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그렇게 자신감을 어느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잠을 자야했다. 현역 때 수능 전날에는 많이 떨고 약 3~4 시간 정도 밖에 못 잤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유를 두기위해 약 9시에 잤다. 이번에는 재수니까 안 떨겠지라는 생각은 오만이였나보다.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무서웠다. 이번 기회마저도 떠나보내면...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심의’라는 꿈은 멀게만 느껴졌다. 이 꿈은 일단 의대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할 수가 없는 꿈이였기에 그 부담감은 더했다. 그렇게 부담감과 함께 시간은 흘러갔고, 약 2시간 정도 잠을 못 자고 있으니까 가족들이 이제 슬슬 입을 열고 무슨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또 30분 정도 지나자 어머니께서 내가 자던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고 불을 키셨는데, 나는 자는척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자는척을 하고 있다가 어느샌가 잠에 든 것 같다. 꿈은 꾸지 않았다. 꽤나 깊게 잔 것 같다. 눈을 뜨니 5시 30분 정도였다. 정말이지 이젠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보여주어야 할 때가 왔다.


  경안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게 되었다. 아버지가 차를 끌고 태워주셨고, 어머니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역시나 그 때도 담담한 척을 했다. 약간은 떨렸지만, 작년의 긴장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렇게 교문 앞에 가게 되었고. 나는 웃으면서 부모님께 감사가 담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제대로 공부 못하고 제대로 시험도 못 본 아들 하나 둔 덕분에,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돈만 부쳐주시고 아들 얼굴은 막상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 보신 분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시험에서는 반드시 마지막까지 웃어야 했다. 비장한 각오로 교문을 통과했다. 응원해주는 고마운 후배들이 있긴 했지만, 난 재수생이기에 사복을 입고 갔다. 날 알아보는 후배도 없었다. 다행이였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괜시리 응원을 받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는 길에 또 다른 재수한 친구를 보았다. 이런 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그 친구도, 나도 웃고 있었겠지만 속은 굳은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토닥여주며 시험장에 들어갔다.


  고사실에 들어갔다. 차분하게 앉아있었지만, 여전히 조금씩 불안함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필통을 열었다. 그 안에 있는 포스트잇에는 ‘서울대 의대 수석합격’이 적혀있었다. 작년에 수능칠 때도 있었고, 내 재수 때도 계속 내 필통 안에 있었던, 고마운 놈이였다. 친구들이 비웃기도 했지만, 나도 함께 농담인척 했지만, 그게 내 수능목표였다. 나는 왜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왜 자신의 꿈을 한정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현실에 굴복하는 건, 성인이 되어서 굴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이니까, 학생답게 꿈을 크게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힘들 때는 그 포스트잇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고, 이 꿈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 포스트잇이 그 순간만큼은, 어떤 친구보다 가장 위로가 되는 친구였다. 그리고 또 위로가 되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는 바로 ‘자신감’이였다. 수능 시험장에서 보통 자신감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만심에 가까운 자신감을 껍데기만이라도 가지고 갔다. 몸은 떨고 있어도, ‘난 재수생이야. 너희들 보다 1년은 더 했다. 모두 발라주마.’라는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말들만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제 1교시, 언어영역이였다. 작년에 6월 9월 모의평가를 백분위를 99 100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수능 때 배신당한 과목이였다. 제일 불안불안한 과목. 그래서 지문 확인은 대충대충하고 마인드컨트롤에 집중했다. 드디어 듣기가 시작되었다. 1번은 쉽게쉽게 넘어갔다. 그런데 2번 약도문제가 나왔다. 상당히 정보의 양이 많았다. 답을 선택하긴 선택했는데, 확신이 들지 않았다. 불안했다. ‘아 이번도 이렇게 듣기에서 놓치나...’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올 뻔 했지만, 다시 내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런 한숨 쉴 시간도 아까웠다.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3, 4번을 무사통과했다. 그런데 다시 또 문제가 터졌다. 5번을 제대로 듣지를 못 했다. 결국 또 찍다시피 답을 선택했고, 듣기가 끝났다. 초장부터 말렸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았지만, 그 당시엔 최악의 경우에는 이미 듣기에서 4점이 날아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상당히 출발이 불안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수능 시험이 늘 그렇듯, 아무 생각없이 흘러만 갔다. 2문제 정도를 남겨놓고 마킹을 다 하고 나니 4분 정도가 남았다. 과학 지문에서 하나, 언어 지문에서 하나가 남았다.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불안해하며 막 풀다보니 논리는 결여되어있었고 남은 건 오로지 직관이였다. 직관 얘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수능 시험장에서 직관은 정말 중요하다. 특히나 마지막 시간에 몰릴 때, 직관이 빛을 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니 평상시에 문제 풀면서 느끼는 감을 무시하지는 않는게 좋다. 물론 감보다는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서 답을 찍어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이야기고 시간에 쫓기거나 완전히 못 풀 것 같은 문제는 감에 의존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찍는 것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더 잘 찍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튼 그렇게 정신없이 1교시가 지나갔다.


  2교시 수리영역. 비록 고3 막바지에 날 배신하긴 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자신있어 했던 과목이였다. 특히나 ‘수리나 과탐은 재수생들의 밭’이라는 통설도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영역만큼은 당당하게 펜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또 시작해보니, 많이 시간이 촉박했다. 처음 계획은 빨리 한 바퀴 돌고 다시 검산하는 것이였지만, 초장부터 막혀대니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 한 문제 한 문제를 꼼꼼히 풀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방법은 내가 100% 제대로 풀었다는 확신이 잘 안 들어서 정말 선호하지 않는 방법이였는데,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문제를 다 풀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사이사이에 문제를 풀었는데 답이 없는 경우도 2번 정도 있었다. 그때마다 밀려오는 불안감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찌됐든 모르는 문제는 빨리빨리 넘어가고 한 바퀴 돌고나니 평상시처럼 40분 정도가 남았지만. 남은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조금씩 후달리기 시작했다. 또 진정제가 필요했다. 필통 안의 포스트잇을 한 번 바라보고 기도를 잠깐했다. 이 문제들 제발 다 풀 수 있게 해달라고.... 약간은 효과가 있었는지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한 15분 정도가 남았고, 1번부터 17번까지의 객관식 문제에서 2문제, 주관식 24, 25번, 그리고 26번에서 29번까지의 객관식 문제에서 1문제, 문제가 5문제 남아있었다. 이제 슬슬 눈이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또 초조함이 날 찾아왔다. 그래도 난 재수생이였다. 한 문제라도 침착하게 풀어야했다. 하지만 마음가짐과는 달리, 결국 10분을 허송세월하고 나서야 25번의 답을 낼 수 있었다. 남은 건 객관식 3문제와 주관식 1문제. 이제 찍기로 결심했다. 마킹을 다 옮기고 1번에서 17번까지의 각 선지별로 나온 횟수를 세어보았다. 수능 수리영역만큼은, 선택지의 비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1번 선택지가 답인 문제가 3문제, 2번 선택지가 답인 문제가 3문제, 3번 선택지가 답인 문제가 3문제, 4번 선택지가 답인 문제가 4문제, 5번 선택지가 답인 문제가 5문제, 이런 식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각 선지마다 적어도 3번은 나와야했다. 그런데 1번부터 17번까지의 답들을 보니 1번은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신이 도와준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문제의 답에 대해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날 믿기로 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좀 더 솔직할 것 같다. 그래서 1번부터 17번까지의 객관식 2개는 전부다 1번으로 밀었다. 나머지 미적 문제도 그런 식으로 2개 중에 하나를 선택했고,(26, 27, 28에 전부다 답이 나왔으므로 나머지 선지는 2개 뿐이였다.) 주관식도 별 수 없이 아무 숫자나 익숙한 놈으로 썼다.


  드디어 수능의 반이 지나갔다. 이제 점심 시간이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서로 시험이야기하면 죽이겠다고 얘기하며 밥을 먹었다.(그래도 약간씩은 답 이야기를 하긴 했다) 신세한탄 같은 애늙은이 같은 이야기도 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모두다 조용히들 밥을 먹었다. 밥을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렀다. 긴장했음이 제대로 느껴져서 조금은 내가 한심했다. 여튼 그렇게 밥을 먹고 다들 파이팅을 불러주며 헤어지고 외국어 영역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제 3교시 외국어영역. 내가 제일 애를 먹은 과목이였다. 항상 마지막에 시간에 쫓기면서 풀었기 때문에, 수능공부 막바지엔 빨리빨리 푸는 습관을 들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영어듣기였다. 항상 난 영어듣기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재수시절에는 반드시 하루에 1세트는 들어줬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과목이 영어듣기였다.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그놈의 1회성이 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여튼 이제 영어듣기가 시작되었다. 약간은 찍은 듯한 문제가 1문제 있었지만 나머지는 잘 푼 것 같았다. 이제 독해영역을 시작했다.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갔고, 초반에는 문제는 상당히 평이했다. 빈칸 초반도 무난했다. 그런데, 빈칸 3점짜리 2문제를 각기 3분씩 투자를 했는데도, 도저히 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패스했다. 그렇게 문제를 풀제를 풀다보니 느낌이 약간 이상했다. 그 느낌은 주제 찾기에서 정점을 찍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신 문제를 푸는 느낌이였다. 거의 체감상 적어도 절반 이상이 EBS 지문이였다. 다시 자신감이 붙었다. 그냥 금방금방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막상 1바퀴를 돌려보니 시간은 약 10분 남아있었다. 부랴부랴 마킹을 하고, 남은 2문제에 집중했다. 그런데도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각각 고민되는 두 선지 중에서 하나씩 고르고 제 3교시를 끝냈다.


  언수외가 끝났다. 마치 수능이 다 끝난 듯한 기분이였지만, 아직은 정신줄을 놓을 때가 아니였다. 최상위권에서는 과탐도 삐끗하면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과탐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N수생은 과탐빼면 시체라는 말을 굳게 믿고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과탐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도대체 모두 제대로 푼 과목이 하나도 없었다. 죄다 1~2문제는 찍은 것 같다. 죄송하지만 그 밖에 얘기는 할 것이 없다. 사실, 과탐은 존재감이 제일 없는 과목이라 수능 당일 날 밤에 답 체크할 때도 기억이 안 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다.


  수능이 끝났다. 10개월에 걸친 나름의 대장정이라면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이였다. 수능이 끝났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그동안 뿜어내지 못했던 한숨을 크게 내쉬어봤다. 한숨을 내 속에서 비워냈다.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그 후에 얼마되지 않아, 그 빈 속을 후회라는 놈이 찾아와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였다. 때늦은 후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뭐든지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은 후회에도 적용된다. 늦지 않은 후회는 반성이라고 불리며, 잠깐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간 나 자신을 다시 옳은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늦은 후회는 자책이라고 불리며, 자신을 패배자로 규정하고 이미 가라앉은 자신을 더더욱 깊은 곳으로 가라앉힌다. 뒤늦은 후회는 하지말라. 그것이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의 나는 대학생이다. 주위에서는 이제 나를 성인으로 취급해주지만, 막상 나 자신은 성인이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재수 때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의 주변인으로 지냈듯이, 지금의 나는 어린이와 어른, 그 어느 부류에도 포함되지 않은 주변인이다. 그래서 주위에선 나 자신에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요구하지만, 막상 나 자신은 그 책임이 두렵고 회피하느라 바쁘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학생들이 느끼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책임을, 꿈을 향해서 가는 모든 고등학생들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을 자유롭게 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에 대한 책임, 즉 그 꿈을 향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그 꿈에 대한 모독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더 하다. 그 사람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 꿈에 대한 실패가 무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을 보고 달리는 사람의 실패는 특별하다. 좀 더 큰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절반의 성공이다.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고3 때 수능을 망했다. 그런데 든 생각은 뭐였을까. ‘아...아쉽다. 아 조금만 더 할걸...’이라는 생각이였을까? 아니다. ‘아쉽다’로 끝이였다. "조금만 더...."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여름방학 때도 오전 자습 끝나고 친한 친구들끼리만 오후 10시까지 공부한 것, 후회를 안 한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즐거웠고, 또 이렇게 절제하며 공부할 수 있다는게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작년에 나는 재수생이였다. 마지막에 방황하고 빈둥빈둥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언수외탐 수능 0.3%이 되고, 그토록 원하던 의대에 합격했다. 그때 든 생각은 뭐였을까.


  다름이 아니라, ‘조금만 더 할걸...’이라는 생각이였다. 왜나면 재수 초기에 불타올랐던 저는 재수 중반부터 점점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노력은 하지않고 빈둥빈둥 노는 빈도가 높아졌다. 수험생분들이 생각하시기엔, 후회되는 0.3%, 후회없는 2% 중에서 어느 것이 좋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나는 후자다. 수능 당일에,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성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래도 이제까지 해왔던 노력들과 자아 성취감,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여러분들을 지지해주는 튼튼한 반석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언제든 여러분을 다시 찾아와서 큼지막한 선물을 하나 안겨줄 것이다. 너무 결과를 중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능이 무섭다는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능의 결과를 무서워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공부해가는 과정을 즐기면서, 불안해하지 말고 고등학교 3년의 결과를 아름답게 꽃피워서 마무리하셨으면 한다. 노력하시는 수험생분들, 모두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꿈을 가지고 그것들을 향해서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모두들 꼭 꿈을 크게 가지시고 큰 사람이 되시길....




P.S.-1




  많은 사람들이 낮잠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앞에서 언급을 하는 것을 깜빡했는데, 생활리듬의 문제도 내가 생각한 재수실패 요인에 들어갔다.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낮에 잠이 오면 자는 스타일이였다. 그래서 매일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잠을 자서, 학교에서 쉬는 시간 10분씩을 2~3번 해서 잠을 보충하는 그런 스타일이였다. 사실, 잠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는 정말 효율적인 잠의 스타일이다. 잠.의. 효율에서만 본다면.... 그런데 정신상태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스타일은 정말 비효율적이다. 다름이 아니라 ‘복불복 낮잠’ 때문이다. 낮잠을 잔 후의 정신 상태는 개인적으로 2개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멍~’, ‘반짝’. 이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반짝’의 경우는 정신이 개운한 상태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잠을 자고나니까 상당히 기분이 상쾌한 경우로, 공부를 10분을 하더라도 다른 상태보다 거의 1.5배의 효율을 지닐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주 바람직한 낮잠이지만, 반전이 있다. 이는 ‘멍~’ 상태인데, 이 상태는 10분이 아니라 심하면 1시간 까지도 날려버린다. 이 상태에 걸린 사람은 보통 잠을 자는 상태도 아니고,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서 공부효율이 땅을 긴다. 이 상태가 안 걸리는 사람들은 낮잠을 강추한다.(물론 수능 2달 정도 전까지만... D-60부터는 몸 관리를 하셔야죠 ^^) 그런데, 이 ‘멍~’상태가 걸리는 사람들은 정말 낮잠을 비추천해주고 싶다. 차라리 잠을 7시간을 자더라도 낮잠은 안 잤으면 한다.
  이렇게 낮잠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끝낸 나는 재수 때, 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그래서 9월달 전까지는 학원 책상위에 누운 적이 10번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얘기이지만, 9월달 이후로는 완전히 생활리듬이 망가져서, 10월쯤이 되자, 심지어 새벽 4시까지 혼자 방에서 노느라 밤을 새고..4시가 되면 잠을 자서 7시에 일어나고, 부족한 잠을 학원에서 보충하게 되었고... 그 덕에 10월달 이후로는 책상은 내 베개가 되었다. 창피한 일이다.

P.S.-2 혹시나 궁금한 점이나 얘기하고 싶은 점 있으시면 쪽지나 댓글 달아주세요.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네요...ㅎ
          모두들 좋은 결과 얻으셔서 꿈에 한 발짝 다가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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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성격 · 263575 · 11/11/15 17:10 · MS 2008

    대단하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 NeuroS · 252220 · 11/11/16 14:53 · MS 2008

    부족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스타벅스 · 201980 · 11/11/16 10:39 · MS 2007

    필력 좋으시네요

  • NeuroS · 252220 · 11/11/16 14:52 · MS 2008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 백수입갤 · 347459 · 11/11/16 11:51 · MS 2017

    안동고 다니셨나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ㅋㅋ

  • NeuroS · 252220 · 11/11/16 14:52 · MS 2008

    안동고를 아시나봐요..ㅎㅎ 감사합니다!

  • 백수입갤 · 347459 · 11/11/16 15:33 · MS 2017

    제가 안동에 살았었거든요 ㅋㅋ 고향이에요

  • NeuroS · 252220 · 11/11/16 17:54 · MS 2008

    참 동향사람끼리 만나기도 쉽지않은데 반갑습니다^^

  • Acezero · 279613 · 11/11/16 12:35 · MS 2009

    멋진글 꼼꼼히 잘 읽었습니다!

    실례지만, 어느 의대를 다니시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 NeuroS · 252220 · 11/11/16 14:51 · MS 2008

    한림대 의대 11학번입니다^^

  • Acezero · 279613 · 11/11/16 15:57 · MS 2009

    이럴수가! 저도 사실 한림대 정시로 지원예정인데요..

    의대 분위기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인가요..? (사실 한림대의대가 위계질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인식이 수험생사이에 많이 퍼져있어서요..)
    춘천에 있어서 서울에 자주 못놀러오는것은 아닌지.. 그리고 기숙사는 어떻게 되는지.. 또.. 남자여자성비는....... 죄송합니다 ㅠ

    너무 많은게 궁금한 수험생 신분이기때문에.. 귀찮으시더라도 짤막하게나마 답변을 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_ _) ㅠㅠ

  • NeuroS · 252220 · 11/11/16 18:06 · MS 2008

    의대 분위기라.... 상당히 조심스럽게 발언해드려야겠네요ㅎㅎ..
    일단 한림대 의대 분위기자체가 엄격한 축에 속하긴 합니다.
    그래도 의대 선후배의 특성(같은 병원에 가서 직장 상사 후임이 된다는 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과대학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시는게 무방합니다. 어딜가시나 약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실거에요...
    예를 들어, 싫은 장기자랑을 시키는 문화.... 노래만 해도 짜증나는데 춤까지 꼭 강요를 하고 아니면 분위기가 얼어버리는...이런 문화들이 즐비한 곳이 의대입니다. 특히나 저희 학교는 약간 심한편이구요, 그래도 학교에 대한 애정이 생기신다면 그렇게 못 다닐 곳은 아닙니다. 의대도 대학교거든요^^ 그리고 이제 저희학교도 점점 분위기가 유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는 모든 의대에 적용되는 듯하구요.
    꼭 인서울이라고 안 빡세다? 그런거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한양대도 상당히 동아리 문화가 빡센편이구요...

    아 글이 너무 길었네요. 정리해드리면, 의대분위기 자체가 약간은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문화가 배여있고, 이는 대학마다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고 정리해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춘천에 있어서 서울에 자주 못 놀러간다는 얘기는 부정하고 싶네요. 저같은 경우에도 서울 친구들 보러 왔다갔다 거립니다.(특히나 의예과생들은 남아 도는게 시간이라서;;;ㅎㅎ 와보시면 압니다ㅜㅜ) 학교에서 상봉역까지 도착하는데 한 1시간 30분 정도(급행기준)이기 때문에 마음만 있으시다면 서울로 간간히 놀러 오시는거 어렵진 않습니다. 저희 동기들 중에는 통학하는 친구들도 있는데요 뭘ㅎㅎ(물론 극소수 입니다! 매일 왔다갔다 할 거리는 아녜요ㅎ)

    그리고 기숙사 문제는요... 저희 학교에는 신기숙사(올해에 신축되었습니다!)와 구기숙사가 있는데요, 신기숙사가 한 학기에 130만원으로 상당히 비싸긴 하지만, 일단 거기서 식비 30만원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한 학기에 약 100만원으로 잡는다면 신기숙사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시설이 전부다 새것들이라서 그냥 좁은 자취방에 사는 기분이에요. 아 신기숙사는 2인 1실입니다. 또, 구 기숙사는 1학기에 50만원이지만 식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예 못 살 정도는 아니구요...(모기만 뺀다면ㅜㅜ) 싼 맛에 살 만한 곳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ㅋㅋㅋ 남녀성비는 저희 11학번 기준으로 3.5:1 정도네요 아무래도 여자 수가 좀 적더라구요. 특히나, 저희 때는 또 수리가 헬수리였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강세를 보였고, 저희 학교가 수리영역을 40%나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혹시나 한림대 붙으시면 쪽지주세요~ 이것도 인연인 것 같아서 밥 한끼 사드리고 싶네요~ㅎ
    한림대가 아니더라도 가장 원하시는 대학 붙길 빌겠습니다!~ 좋은 결과 빕니다^^

  • Acezero · 279613 · 11/11/16 18:22 · MS 2009

    정말 긴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붙지도 않았지만 걱정도 많이 되고 했었는데 맘이 한결 편해지네요..
    다군 붙기만 하면 모든걸 제쳐놓고 한림으로 달려갈 생각이에요!! ㅎㅎ 꼭 선배님으로 모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혹시 붙으면 바로쪽지날릴께요!! ㅎㅎ

  • Acezero · 279613 · 11/11/16 18:42 · MS 2009

    아!! 혹시 신기숙사는 의예과학생이면 무조건 입사 가능한가요?

  • NeuroS · 252220 · 11/11/16 19:37 · MS 2008

    ㅎㅎ 감사합니다!! 꼭 붙으시길 빌게요~
    그나저나 신기숙사는 1학기는 성적이 어느정도는 되셔야 할 거에요ㅜㅜ
    저 같은 경우에는 나군 예비 4번, 다군 예비 90번이였는데 구긱 썼거든요..ㅋㅋㅋ
    한 학기만 고생하시면 2학기는 아마 그냥 신긱에 사실거에요..
    (싼 맛에 구긱 쓰는 사람+타과와 같이 듣는 교양에서의 비교적 우위때문에요 ㅎㅎ)

  • 토로 · 254852 · 11/11/16 16:20 · MS 2018

    안동고 제 1년 선배이신거 같네요 ㅠㅠ 문과지만 저도 재수를 했는데... 결과가 안좋네요... 정말 열심히 혹독하게 했는데... 폰도 다 끊고 독학으로... 이미 수능은 끝났고 선배님 글 보니 제 재수생활이 선배님만큼은 못미쳤다 라는 생각도 들구요...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지금 삼수를 할지 삼반수를 할지 점수맞춰 대학을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1년 더 한다면 정말 선배님 글 보면서 열심히 해 볼 생각이 들 만큼 글 잘 쓰셨어요 ㅎㅎ 정말 부럽구... 존경스럽습니다 ㅎㅎ

  • NeuroS · 252220 · 11/11/16 18:09 · MS 2008

    아 1년 후배님이시군요..ㅜㅜ 혹독하게 해도 결과가 못 나올수도 있죠... 제 동기분도 삼수하셨는데 9월 모의평가 대성학원에서 전국 1등하고 그런 형이였는데..수능 망하셔서 지방의대에 오셨거든요...그래도 그 노력은 배반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미 재수 때 힘들어 했던것들 전부다 감사하고 있거든요. 후배님께서도 지금 힘들어 하시는 것들 나중에는 웃으며 넘기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왜 이런말도 있잖아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이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 줄 글귀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참 힘들어하시는 모습보니 제 생각나서 안타깝네요... 삼수를 하시든지 삼반수를 하시든지 꼭 후회없는 선택하시고, 꼭 원하시는 꿈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힘내세요!

  • 토로 · 254852 · 11/11/16 18:29 · MS 2018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그래도 현역 때보단 공부를 훨씬 열심히 한 것 같긴 해요 현역 때는 수능 망치고도 그냥 멍했지만 재수 때 수능치니 다르더군요... 그냥 눈물이 터지더라구요 억지로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괜찮다 열심히 한거 다안다 니혼자 힘들었던거 다안다'' 하시더라구요.. 부모님 사랑도 확인하고 ㅠㅠ 부모님께서도 저 힘든거 아시고 삼수 만류 하시는 분위긴데.. ㅎㅎ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 연고대 가고싶었고 모평 성적으론 갈 수 있따 싶었는데... 하나 밖에 없는 장남이구... 근데 참 무섭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시험 중에 수능이란게 참 쉬운 축에 속하지 않습니까 근데 고작 이런 시험에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죽고싶어하고 실패하고... 참 그런 게 무섭더라구요 앞으로 더 한게 숱할텐데 어떡하나.. 하구요 그래서 재수를 택했는데 잘 안됐네요... 고대논술이 남앗는데 공부를 하는데 머리엔 하나도 안들어오고 다 튕겨내는 느낌입니다.. 하아 글이 참 두서없네요... 재수하면서 뭣때문인지 사람이 점점 멍청해진 느낌이구요 원래 소심했는데 더욱더 소심해지고 혼자 갇혀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곁에 가족이라는 큰 안식처가 있지만서도... 에휴 제 관점이 참 부정적인 거 같아요 ㅠㅠ 근데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잘하는건 공부밖에 없거든요... 아무것도 없거든요 정말 ㅠㅠ 할 줄 아는게 공부밖에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해와서 주변 기대도 있고... 하아 모르겟습니다

  • NeuroS · 252220 · 11/11/16 19:46 · MS 2008

    그런데 어찌보면 수능이 더 무서울 수도 있어요. 수능의 1회성이라는 것 때문에 긴장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사회에 나가면 그래도 1번에 끝나는게 아니라 여러번이나마 기회를 줄텐데.. 그런 차이가 무서울 수도 있죠.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가족과 한 번 시원하게 이야기해보세요. 아니면 친한 친구한테라도... 부정적인 생각은 입 밖으로 배출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거든요. 조언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저 한풀이 하는 생각으로 하나씩 솔직하게 뱉어내보세요....그것도 힘드시면 일기도 괜찮아요^^ 일기에게 화풀이 해보세요.
    그래도 힘드시면 쪽지 한번 주세요 인터넷 상이라도 도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자기 자신이 좋자고 공부하는 건데 공부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시면 안되죠~ㅎ
    매순간 순간 힘들어 하는 것을 즐기세요. 힘들어 하지 않는 인간은 꿈도 발전도 없는 인간이거든요....
    힘들어 하는 자신을 대견해하시고 그걸 원동력 삼아서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토로 · 254852 · 11/11/17 18:59 · MS 2018

    선배님께 부정적인 거 얘기하면서 조금은 가시는 것 같네요 ㅎㅎ;; 뭐 인생 어쩌겟어요 ㅠㅠ 받은 잔은 참고 비워야지.... 앞으로 몇 달간 시간도 많은데 차근히 생각해볼렵니다 어떻게 살지 ㅎㅎ 잠시 푹 쉬었다가 정말 이겨낼겁니다! ㅋㅎ 정말 선배님 강한 분이시고 멋진 분이신거 같아요 안고에 이런 멋진 분이 계셨다니;; 그럼 앞으로 힘들면 쪽지도 하고 그럴게요 ㅎㅎ 힘낼게요 감사해요

  • NeuroS · 252220 · 11/11/17 19:16 · MS 2008

    현실은 0.1t 돼지라는 별명을 지닌 이상한 놈이였을 뿐이에요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ㅋㅋ
    저는 오르비 자주 안 하니까 쪽지보내셨을 때 답장 안 오면 힘드실 때 010-5125-4815로 연락주세요~
    오프라인은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문자로 도움 드릴게요 ㅎ

  • 토로 · 254852 · 11/11/18 17:24 · MS 2018

    저도 부끄럼쟁이라서 ㅎㅎ 감사해요 전화번호 저장해놓을게요 ㅎㅎ

  • 오르비를또하게될줄이야 · 377066 · 11/11/16 16:48

    .....올드보이 ost 듣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감동이 두배......

  • NeuroS · 252220 · 11/11/16 18:10 · MS 2008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 엘러리 · 315829 · 11/11/16 18:02 · MS 2009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 NeuroS · 252220 · 11/11/16 18:10 · MS 2008

    넵^^

  • 주변의중심 · 339807 · 11/11/16 20:14 · MS 2010

    어머니의 그륵....

  • NeuroS · 252220 · 11/11/16 21:39 · MS 2008

    무슨 의미인지 잘 못알아듣겠네요ㅜㅜ 여튼 좋은 꿈 꾸세요~ㅎ

  • NeuroS · 252220 · 12/03/07 23:43 · MS 2008

    아 오랫만에 들어오니 다시 알아듣겠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상당히 거친 표현이셨네요.
    어머니의 그릇이 아니라, 제 그릇입니다. 처음에는 제 꿈인지도 모른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확실한 제 꿈입니다.
    제 꿈을 그렇게 맘대로 표현하시니 조금 씁쓸합니다....
    여튼 좋은꿈 꾸셔서 보람있는 일 하셨으면 좋겠네요...

  • Navyseals · 378068 · 11/11/17 13:35 · MS 2011

    꿈에 대한 모독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오늘 학교가 일찍 끝났는데 글 덕분에 마음다잡고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 NeuroS · 252220 · 11/11/17 15:21 · MS 2008

    그렇게 느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 연세대 치의예 · 365495 · 11/11/18 00:26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연세대 치의예 · 365495 · 11/11/18 16:08

    어느대학가셨어요??

  • NeuroS · 252220 · 11/11/19 07:46 · MS 2008

    한림대 의예 11학번입니다

  • 으잌으잌으잌 · 315868 · 11/11/19 16:40 · MS 2009

    후회되는0.3% 후회없는2% 이부분 공감가네요

  • NeuroS · 252220 · 11/11/20 09:50 · MS 2008

    뭐든지 노력을 했다면 결과에 상관없는 성취감이 느껴지더라구요 ㅎ

  • SK라인 · 341341 · 11/11/20 20:50 · MS 2010

    문과생입니다...언외탐다만점에가깝게 잘봤지만 수리에서 미끄러져 재수해야할것같은 학생입니다.. 문과 수리나형 우습게 보이시겠지만 수리영역 공부법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인강을 들으셨는지 어떤 문제집이나 공부법을 취하셨는지 등등알려주시면 새겨듣겠습니다... 아그리고 어디의대붙으셨는지 물어도될지요...

  • NeuroS · 252220 · 11/11/21 22:46 · MS 2008

    수리영역 공부법에 대해서 제가 드릴 말씀은 수기에 잘 써드렸다고 생각됩니다.
    또한,저는 인강을 거의 듣지 않았구요...
    공부법은 이미 수기에 말씀드렸고
    문제집은 닥치는 대로 풀었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문제집은 근데 아무래도 기출문제집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현역때는 항상 막 풀었기 때문에 닥치는대로 풀었지만,
    재수 때는 개념위주로 했기 때문에 깔끔하고 핵심만 묻는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림대 의예과 재학 중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은 왠지 방향이 어긋난 질문 같네요ㅜㅜ

  • 따따따하 · 388606 · 11/12/13 16:30 · MS 2011

    글 정말 잘쓰시네요, ,, 보는내내 완전 다 공감되드라구요..ㅎㅎ
    저도 의대를 꿈꾸는 인으로써 재수하려하는데 도움 많이 얻구 갑니다^^

  • NeuroS · 252220 · 11/12/13 22:01 · MS 2008

    감사합니다... 재수 굳세게 하셔서 꼭 원하시는 꿈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화이팅!

  • 미아카피탈레 · 372629 · 11/12/26 00:34 · MS 2011

    이번해에 반수 하게 됬는데 상당히 공감 되는 내용이 많네요. 저도 숫기가 없고 정신력이 많이 약해서 말이죠..

    저만 그런게 아니란걸 느끼게 해줘서 뭐랄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기도 하네요. 그리고 특히 '후회되는 0.3% 후회없는 2%' 정말 마음에 와닿는 글귀였습니다.

    아무쪼록 고뇌가 담겨있는 긴글 쓰시느라 수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 NeuroS · 252220 · 11/12/29 20:01 · MS 2008

    정신력이 그렇게 강한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 없을거에요~ㅎㅎ
    제 글이 위로 뿐만 아니라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좋겠네요..ㅋㅋ
    열심히 공부하셔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빌게요 ^^ 화이팅!

  • 노력이 · 387300 · 11/12/27 14:40

    격하게 공감 되서 신기해요...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게 아니었군요 ㅇㅇ
    저는 올해 후회없는 2% 현역이었지만 원서쓸때 되니까 피눈물은 나더라구요ㅎㅎ...
    저도 매년 학기초에 교우관계 트라우마 때문에...신경쓰느라 100%집중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끝까지 후회는 안 된다고 하는 제 자신이 신기하기도 해요 자기 합리화 일지도 -_-;
    재수생활 끝까지 힘내서 하겠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려요.

  • NeuroS · 252220 · 11/12/29 20:03 · MS 2008

    후회가 안되신다면 그건 정말 열심히 하신거에요~ㅎ
    수능을 만족스럽게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수능이 워낙 인생에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ㅋㅋ

    노력이...라는 닉네임이 정말 맘에 드네요ㅋㅋㅋ
    기왕에 하시는 재수생활 이번에도 후회없는 1년 보내셔서
    후회없는 결과 뿐만 아니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

  • 예찌 · 341604 · 12/01/01 23:38

    정말..잘읽었습니다
    안동사시나봐요 전 풍산고다녔었습니다..집은 용인이고..그리고 올해 졸업하구요
    그리고..서울에서 재수합니다ㅎㅎ
    아..진짜 공감이 많이되는 수기에요
    진짜 저랑 겹치는 부분이 너무많아서 읽으면서 되게 신기하고
    또, 감사했어요..
    저도 수능에서 제인생 최하의 성적을 받은터라 재수를 결심했는데..
    수리영역 1~2외에등급은 받아본적도없는데
    수능에서 4등급떴네요..
    선배님 말씀대로 어.. 실수를 잘못으로 인정하지않는 합리화하는 태도때문인거같기도하고
    또 선배님과는 좀 반대로 문제를 너무 심하게 안풀었는거같기도하고
    항상 수리에 자신은 있는데 뭔가 수리에 매여사는 느낌..
    수리는 잘해야한다는 그런 생각때문에 열심히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고삼때 수리를 1학기까지 개념보느라 정신이없었고
    맨날 개념개념개념하다가 문제를 푸는걸 좀 놓쳤어요..
    선배님 재수때 수리영역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어..저도 선배님이랑 마찬가지로 학교수업 개무시했는거 지금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재수할땐 절대 집중하고 복습도 꼬박꼬박 하려구요..
    아무튼 수기 정말 잘읽었습니다^^컴퓨터에 저장했어요^^

  • NeuroS · 252220 · 12/01/02 19:25 · MS 2008

    보잘것없는 글을 저장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재수를 하신다 하니 안타깝기도 하네요...ㅜ
    여튼 재수하실 때 공부방식은 다름이 아니라 고3 때처럼 하시면 될 것 같네요. 고3 때야 내신기간이다해서 바쁘지만 재수는 공부할 시간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천천히 한 4~5월 달까지는 개념 위주로 공부하셔도 괜찮아요. 물론 계속 수학의 정석같은 개념서를 보란 말씀은 아니고 개념을 하나 하나 뜯어가며 어떻게 문제에 적용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공부하시란 말씀이에요ㅎㅎ.. 그리고 문제 풀이는 모든 과목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틀린 문제에 맞은 문제보다 더 감사해야 합니다. 틀린 문제는 반드시 다음에는 이런 문제를 틀리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곱씹어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수기에도 써놨는지 모르겠지만 오답노트를 만들기 귀찮으시다면 문제는 붙이지 마시고 왜 틀렸는지에 대해서만 노트에 단원별로 쓰셔도 괜찮습니다. 2를 3으로 잘못봤다? 이런 것도 그냥 그 틀린 단원에 쓰시구요...사소한 실수도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사소한 걸 왜! 틀렸나에 대해서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학원수업 들으시면 한 2주~1달 정도는 열심히 들어보세요. 그 다음에 판단하셔도 늦지 않아요. 특히나 그 때는 아직 시동이 걸리기 전이라 공부하셔도 능률이 별로 좋지 않으실 때거든요ㅎㅎ..
    여튼 기왕에 하시는 재수! 꼭 성공하셔서 풍산고에 플랜카드 하나 거시길 빌게요^^ 화이팅입니다~

  • 예찌 · 341604 · 12/01/02 23:32

    좋은말씀감사드려요^^ 항상틀린문제를 곱씹는마음으로 공부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 qkrwodud91 · 396688 · 12/01/04 23:47 · MS 2011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원래 고1,2,3때 꿈이 경찰대였는데 떨어질때는 별로 감흥이 없어서 원인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이 글에 해답이 존재하네요.
    저도 이제 저의 꿈을 한번 찾아 봐야겠습니다.

  • NeuroS · 252220 · 12/01/08 01:19 · MS 2008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주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에게 충분히 보람이 있네요ㅎㅎ
    적성과 흥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꿈을 찾으시길 빌겠습니다. 힙내세요!^^

  • 육사가자 · 397889 · 12/01/07 13:58 · MS 2011

    글잘쓰시네요... 작가를 생각해보실만두 햇네요.....

    저기 언어모의고사를 보고난후 분석을 어떻게하죠?? ㅠㅠ

    그리고 수학 개념은 무슨책으로하나요? 어떤님은 교과서로 하라는데 개념원리말구

  • NeuroS · 252220 · 12/01/08 01:27 · MS 2008

    모든 과목에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항상 "왜 틀렸을까"라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특성상 애매모호한 부분들은 친구들에게 묻고 물어서 충분히 수긍이 갈 때까지 팠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은 해설지보다는 친구들의 말이 더 최고의 해설이더라구요..ㅋㅋ
    한 친구한테서 수긍이 100%가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그렇게 계속해서 그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면
    그게 그들의 논리에 객관성을 부여해주는 요소일 겁니다. 그렇게 반드시 틀린 것들을 왜?라고 질문해 보시구요
    그리고 어려웠던 지문들은 항상 지문분석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지문분석을 하다보면 왜 이 문제가 나왔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됩니다. 저도 잘 안되었었는데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다보니 그렇게 되더라구요ㅎㅎ...물론 제가
    출제자가 아닌터라, 모든 질문에 잘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몇몇 지문들은 출제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런건 소설과 비문학에서 잘 나타나더라구요ㅋㅋ

    수학 개념은 뭐 정석도 괜찮고, 바이블도 괜찮고, 개념원리도 괜찮습니다. 그냥 편하신대로 하시고,
    개념노트 만드실 때는 모두다 종합하시는 것이 아무래도 좋으시겠죠. 그리고 그 개념들은 책에만 나와있는 개념들 말고
    문제 풀이에 적용되는 개념들도 포함해주시면 더더욱 좋습니다. 아, 반드시 요령과 개념은 구분해주시구요ㅋㅋㅋ

    수학은 개념노트, 실수노트 이 두 개만 목매달고 했었네요. 열심히 하셔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빌겠습니다^^

  • 베니 · 374249 · 12/02/04 01:25

    너무너무 와닿는 글이네요.. 가끔 자기 목표를 현실이라는비겁헌 핑계로 깎아내리는 애들을 보면.. 쟤들은 저래서 안되겠구나 싶더라구요.. 꿈이란 좋은 단어죠? 그쵸?

  • NeuroS · 252220 · 12/03/02 03:45 · MS 2008

    네 좋은 단어입니다ㅎㅎ 듣기만 해도 설레는 그런 좋은 단어죠~^^

  • olive2003 · 403333 · 12/02/26 23:48 · MS 2012

    저도 이제 고1 올라갑니다. 치과의사가 꼭 되고 싶는데 뭔가 모르게 나따위가?..라는생각이 스쳐지나가네요ㅠ 저는 중학교때는 내신기간 때만공부해서 반에서3등정도만 유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근데 치대가 꼭가고싶습니다. 꼭갈껍니다. 어느정도해야되는지 조언 해주세요 아직 막막하네요 공부하려는 의지만은 정말강한데말이에요.. 잠자는것도 고민인데 몇시간 정도 잘까요ㅠ 아 그리고 1,2학년때 전국학력평가치는거 따로 시험학습해야되나요?

  • NeuroS · 252220 · 12/03/02 03:50 · MS 2008

    제가 처음에 고등학교 들어갔을 때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네요ㅎㅎ 공부하려는 의지만이 강하시다면 어느 정도 해야하는지 물어보시지 않으실거에요...어느 정도 해야하나요?라고 묻는 순간 이미 기준치를 넘으면 공부를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약간은 내포되어 있거든요...공부하려는 의지가 강하시다면 기준은 이미 필요가 없고 공부를 꾸준히 하시면 됩니다. 잠은 사람마다 다르시기 때문에 약간은 시행착오를 겪으셔야 할 거에요~ 아마 6시간 취침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단 낮잠은 최대한!! 자제하시구요...그리고 전국학력평가에 그리 의미 안 두셔도 됩니다. 고3 모의고사와 고1,고2 모의고사는 아무래도 의미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모의고사에 목숨거시는 것보다 기초적인 언수외 능력에 투자하시는 것이 좋으실 거에요~ 뭐..굳이 하신다면 2주에 1번? 아니면 1달에 한번 정도로 넘기는 모의고사를 가끔씩 푸셔서 시간분배의 감을 익히시는 것도 좋습니다. 힘내시고 꿈 꼭 이루십시오^0^

  • 작은 불씨 · 384438 · 12/03/06 00:51 · MS 2018

    저도 스포 초6부터 고2까지 했어요ㅋㅋㅋㅋ 결국엔 올해재수합니다ㅜㅜ

  • NeuroS · 252220 · 12/04/06 02:01 · MS 2008

    ㅠㅠ 저랑 비슷한 테크를 타셨네요....부디 이번 재수는 성공하시고 원하시는 꿈 꼭! 이루길 빌겠습니다. 힘내세요!^^

  • NeuroS · 252220 · 12/03/07 23:42 · MS 2008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ILYou · 408172 · 12/07/17 11:11 · MS 2012

    저랑 어릴 때 똑같으신요..
    저도 어릴 때 저렇게 정해지고 4학년때부터 한의사를 목표로 한자공부해서 한자 2급을 거의 1년만에 따고, 그렇게 미치도록 공부만 중1때까지 하더니, 님과는 다르게 중2 올라가며 압박에 질리고 공부에 질려, 고1때까지 놀아버리고...지금은 재수중입니다..
    망한 인생 되돌려야 하는데..내가 만족하지 못한 망한 인생..

    에라이..=ㅁ=..
    정신 차리자.

  • NeuroS · 252220 · 12/09/24 04:30 · MS 2008

    오랫만에 오르비 오니 반갑네요. 댓글대로 정신 차리시고 마지막 힘 꽉! 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수능, 조금만 힘내시고 좋은 결과 얻으시길 빕니다~!

  • zzz기 · 378655 · 12/08/26 22:26 · MS 2011

    블로그에 퍼가겠습니다. 감사해요.. 지금 너무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열심히 해볼랍니다. 감사해요!

  • NeuroS · 252220 · 12/09/24 04:32 · MS 2008

    감사하다는 말씀에 제가 더 감사하네요. 이제까지 글 써온게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감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힘내시고 원하시는 결과, 원하시는 그릇에 가까운 사람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