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ri [2] · MS 2002 · 쪽지

2011-10-08 23: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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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man Brothers - Insult to Injury No. 3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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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 Chapman and Dinos Chapman, Insult to Injury No. 39, 2003.

종이에 손을 베인 것 같은 느낌. 혹은 곧 베일 것 같은 불안하고 불쾌한 느낌. 첫 느낌은 그렇게 시작한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을 품는 틀로서 흔히 신성하거나 소중하다고 간주되는 불가침 영역의 것이며, 그 신성함 혹은 소중함은 영혼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화든지 사체를 소거하는 의식에 대해서는 정교한 규칙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의사라는 직업은 나로 하여금 육체와 생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어서는 문화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위치에 설 것을 강요한다. 직업의 존재 의의 자체가 육체의 원형을 보존하고 유지하게 하는 편에 서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규 교육을 마친 의사로 일반인이 사체 그 자체나 분리된 기관이나 조직을 접할 때, 혹은 그것이 분리되는 과정을 상상하거나 목격할 때 가질 법한 공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흔히 동반할 것이라 추정되는 다른 감정들 - 이를테면 불쾌함, 당혹스러움, 무기력감 같은 것들이, 공포가 채우지 못한 남은 자리를 채우며, 마음 속에서 증폭된다.

이 작품은 그 원형조차 의사가 보존해야 할 육신을 해체해 놓은 상태라 그러한 당혹스러움과 무기력감을 주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러니까 단어 그대로 insult to injury로, 이 형제들은 그 해체물에 조롱과 위트를 더해 더욱 감정의 골을 깊게 한다. 흡사 도대체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게 덤비고 싶으면 덤벼봐라-라고 하듯이. 그래서 볼 때마다 마치 독한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각성을 일으킨다. 그런 극도의 각성 상태는 마치 텅빈 도로를 270km의 속도로 달릴 때의 각성과 유사하고, 날카로운 칼을 미간으로 끌어들여 칼끝이 시야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라질 위치에 와있는 것과 같은 느낌과도 흡사하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지만, 우리가 항상 어떠한 결과를 유발한 원인을 의식하며 그 결과를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이 일으키는 각성과 흥분은 기본적으로 불쾌함에 근원하고 있지만, 종종 극도의 쾌감도 유사한 각성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 차츰 시간이 지나면 그 불쾌함은 잊혀지고, 각성과 흥분만이 남아도는 상태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처음의 불쾌함은 강렬하지만 잔잔하게 남아 있는 흥분으로 정리된다. 그 흥분은 좋다.

100km 도 안 되는 거리에 적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휴전국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불과 몇 년 전에도 내가 응급소생술을 수련받고 있던 건물에서 유골 더미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발자국 하나 하나에 마른지 얼마 안 되는 피와 화약이 묻어 있다. 언제 육체에 대한 모욕이 일어나도 낯설지 않은 곳에서 나는 성장했고, 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언제 어디에서 경험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미 이 작품을 겪은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기시감을 준다.

아울러 그러한 사실은 나에게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자는 생각을 항상 하게 하는 이유다. 바로 다음 날 아무런 예고 없이 나와 내 가족이 소멸되어 버릴 수도 있음을 의식하고 있을 때, 도대체 지금 이 시각 주식 시장의 옵션 프리미엄이 무슨 상관이며, 내가 내키는 삶을 살겠다는데 남들이 뒤에서 뭐라 수군거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치 있는 오늘을 살려면, 어떻게 오늘을 살 것인가?   이 작품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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